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어린 딘과 샘은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매미소리는 처절했다. 동그란 턱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흙바닥에 스며들 때 결국 샘은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렸다. 딘은 골치가 아파졌다. 샘과 집을 지키라던 아버지의 말씀을 어기고 이곳에 왔다. 1시간 뒤면 아버지가 돌아오신다. 만약 그때까지 샘과 돌아가지 못한다면 크게 혼날게 뻔했다. 어떻게 어린 동생을 데리고 위험한 숲속에 들어갈 생각을 다했냐며 꾸중을 들을 터였다. 샘이 잠자리와 매미를 잡고 싶어 했다고 변명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딘은 울고 있는 샘이 미워졌다. 샘의 입은 땅콩모양처럼 변해 아빠를 부르고 있었다. 샘의 머리를 퍽 치면서 ‘울지마!’하고 소리쳤다. 샘은 깜짝 놀란 얼굴을 하다가 다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정말 듣기 싫은 소리였다.
딘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정신없이 흘러내렸다. 땀을 닦아내기 위해 오른손을 들려고 했을 때, 움직이지 않는 묵직한 손을 느꼈다. 샘의 작은 손이 자신의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동생은 여전히 정신없이 엉엉 울고 있었다. 자신이 버리지 말아달라는 걸까. 지켜달라는 걸까. 딘의 손을 잡은 줄도 모르고 우는 샘을 보며 동생을 때렸던 자신을 조금 후회했다. 그리고 그 손을 보다 꼬옥 잡아 주었다. 손을 뿌리치라는 악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딘은 그러지 않았다. 그 손은 너무 작고, 말랑했고, 또 연약했다. 딘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동생의 울음과 매미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걱정되긴 했지만 외롭진 않았다.
*
술을 좀 마셨다. 침울하게 빛나는 혀 사이로 액체들이 마구마구 흘러 들어갔다. 딘은 그것들이 미지근하게 변할 틈을 주지 않았다. 마시고 마셨다. 그리고 곁에 있는 이웃남자가 ‘이것 좀 위험하겠는데’하고 생각할 즈음 꼬꾸라졌다. 리사는 모든 것을 목격하고 있었다. 시간은 초저녁이었고 이웃들과 같이 바비큐 파티를 하던 중이었다. 바비큐 파티 중 그녀의 남편은 저 혼자 퍼마시다 널브러져 버린 것이다. 옆집의 조지가 침대에 딘을 눕히는 것을 보며 리사는 자신의 입술을 거칠게 매만졌다. 마음 같아서는 파티를 접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파티를 접어버리는 대신, 잔디밭으로 걸음을 돌렸다. 여자들이 수다스럽게 그가 괜찮냐며 물어왔지만 걱정도 금방이었다. 그녀를 제외하고 모두들 웃고 떠들었다. 리사는 웃는 척했다.
딘은 침대에서 꼬물꼬물 거리고 있었다. 정신은 몽롱했고 밖에서는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도 있고 그렇지 않은 목소리도 있었다. 딘은 그 목소리들 중 리사의 목소리와 이웃집 조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조지와 죽도록 퍼마시다가 이렇게 된 건가? 아니 그건 저번 주인데. 그러면 지금의 나는 왜 이렇게 꼬꾸라져 있는 거지. 딘은 속으로 중얼 거렸다.
요즘 따라 일상을 구분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어제 있는 일이 저번 주 같았고 저번 주에 있던 일이 오늘같이 여겨졌다. 조지와 한탕했던 저번 주의 일만해도 그랬다. 그 일은 이상하도록 선명해서 어제 있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에 비해 별것 없는 내용이었다. 그때 조지는 카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다 불쑥 다른 화제를 꺼냈다.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와과 나이차가 퍽 나는데 이번에 시집을 간다고 말했던 것 같았다. 그 이야기에 딘은 ‘고생이겠네.’ 하는 말만 던질 뿐이었다. 조지는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자 당연하다는 듯이 ‘자네는 형제 없어?’하고 물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을 텐데. 분위기를 어떻게든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는 조지를 보며 딘은 맥주잔을 들었다. 표면에서 물방울들이 툭툭 미끄러져 테이블의 결 사이로 번져들었다.
‘지옥에 있지.’
조지는 맥주를 들던 손을 멈칫하더니 ‘지금 내가 들은 게 맞는 거야?’하고 말했다. 평소 장난스럽고 좋은 성격이었던 것만큼이나 그는 이런 대화를 능숙하게 넘길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딘이 맥주를 살짝 들어보이자 조지는 ‘죽은 거야?’하고 용감하게 물어왔다. 딘은 그냥 웃었다. 조지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듯했지만 더 이상 무엇도 묻지 않았다. 순간적이고 단순한 이야기였으나 샘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은 매우 간만의 일이었다. 그때를 떠올리자 딘은 손발이 저릿해졌다.
밖에선 웃고 떠드는 소리와 고기를 굽고 맥주병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즐거운 소리였다. 분명 즐거워서 견딜 수 없는 소리였는데, 딘은 그저 견딜 수가 없어졌다. 비하하듯 ‘갱년긴가.’하고 생각했으나 전혀 우습지 않았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문질렀다. 차라리 이대로 잠에 빠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리사에게 욕 좀 먹겠지만 평소처럼 미안하다고 말하면 한숨 쉬며 식사나 하라고 말할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식사를 하고 일하러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고민하고 걱정할일이 전혀 없었다.
딘은 눈을 감았다. 어둠이 그를 향해 몰려왔다. 자신은 노력하고 있었다. 변하는 것에 대하여 익숙해지려했다. 샘의 부재로 변해버린 모든 것들을 받아드리며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쉽진 않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제기랄.”
그것이 가장 슬펐다.
싸구려 호텔에서 자다가 일어나는 대신 리사가 있는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은탄과 성수를 신경 쓰는 대신에 몽키 스패너와 볼트, 너트를 신경 썼다. 사건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벽을 바라보며 햄버거를 씹는 대신, 가족들이 있는 식탁에 앉아 그들의 얼굴을 보며 식사했다. 가끔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행복했다. 그리고 딘은 이 행복을 견딜 수가 없었다. 샘 없이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었다. 동생은 땅속에 처박혀서 살갗이 뜯기고 지랄맞은 천사와 악마에게 고문당하고 있는데, 그저 형이란 작자는 좋다고, 행복하다고 웃고 있는 것이다.
“아니야, 아니야.”
벌떡 일어나 침대와 매트 사이에 있던 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능숙하게 목소리를 향해 조준했다. 딘의 녹색 눈이 몇 년 전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아직도 거기에 총을 넣어두는 거야? 네 마누라는 뭐라고 안 해? 하기야. 누가 뭐라 한다고 듣는 인간은 아니지.”
‘고생이야. 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은.’ 상대가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딘은 잠시 어둠속에서 상대의 얼굴을 살피기 위해서 애썼다. 하지만 몰려 있는 어둠이 짙어, 살펴보기가 어려웠다. 딘은 곁에 있는 스탠드를 켜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딘이 손을 뻗기도 전에 스탠드가 켜졌다.
“안녕!”
“정말 엿 같은 꿈이야.”
딘이 은탄이 든 총을 이불위로 툭 내리며 중얼거렸다.
“친절한 인사 고마워.”
상대가 ‘흥-’하고 콧방귀를 끼면서 딘에게 말했다.
“난 이제 잘 거야. 그러니까 내 꿈에서 꺼져.”
“우리의 마지막 인사가 감동적이었던 것에 반해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래봬도 나 너희 형제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쳤는데.”
“그래서. 그 목숨 값 받아 내려고 온 거야?”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사내가 어물거리면서 말했다. 딘은 넋 잃은 웃음을 지으면서 한탄했다. 가브리엘이라니. 루시퍼면 루시퍼고, 미카엘이라면 미카엘, 크라울리라면 크라울리라지만 뜬금없이 가브리엘은 대체 뭐란 말인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브리엘이 매우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나 보다. 하기야 그따위 마지막 인사를 어찌 잊겠는가. 의도치 않게 천사의 벗은 몸을 보게 되었던 기억을 되새기자니 이 상황이 어이없어졌다.
“보수라면 식탁에 초콜렛있어. 그거라도 처먹던가.”
“그건 이미 먹었어. 첨언으로 네 아들 초콜렛 취향 진짜 구리다. 다크 키세스라니. 그걸 왜먹어. 차라리 사약을 얼려먹지 그래?”
‘그거 말하려고 온건 아니겠지?’ 딘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여전히 침대에서 앉아 있는 채였다. 아마 가브리엘이 뭐라고 더 중얼거린다면 바로 침대에 누워버릴 태세였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가브리엘인 ‘그래서 내가 여기에 왜 왔냐면-’하고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남의 꿈속에 허락 없이 방문해놓고 초대받은 것 마냥 으스대는 꼴이라니. 딘이 눈썹을 찌푸리며 가브리엘을 보자 그는 작달만한 다리를 깔짝이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하고 중얼거렸다.
“아들 하니까 생각난 건데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성모에게 수태고지를 한 것이 나였단 말이지. 아무래도 기원전 시기에는 천사도 옷차림이 매우 엄격해서 말이야 -마치 일본 고등학생들 같았지. 물론 나는 끝단 안 줄였어. 복장위반이라고 마이클이 잔소리 했거든- 허연색 살랑거리는 옷 입고서 그 여자를 만났단 말이야. 그런데 그 여자가 날 보자마자 갑자기 강도라면서 발차기를 날리는 거야! 그 발차기를 날리는 와중에도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배를 꼬옥 안고 있는 것은 감동적이었지만, 그 발차기 진짜 아팠다니까! 내가 이후에 잔다르크한테 뺨맞은 적도 있었지만 마리아의 발차기가 제일 아팠어. 인류의 발차기였지. 역시 예수를 품은 여자답지 않아?”
“.......”
“이봐, 너 지금 자는 건 아니겠지.”
가브리엘이 손가락 끝으로 딘의 베개와 이불을 휙 날려버렸다. 신성모독을 -대천사가 하는 말이니 이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듣던 딘은 이 어이없는 고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브리엘은 딘이 만난 천사 중에 가장 말이 많았다. 그리고 가장 사이코 같았다. 천사의 위장을 숨기기 위해 괴물노릇을 한 콤플렉스 덩어리 천사라니. 미카엘과 루시퍼에게 별종 취급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다 상관없었다. 딘은 빨리 자고 싶었다.
“헛소리 할 거면 꺼져.”
“카스티엘은 대체 너의 뭐가 좋은 거래? 시건방지지, 싸가지 없지, 더군다나 브라더 콤플렉스. 그나마 괜찮은 건 얼굴뿐인데. 역시 얼굴 때문인가? 카스티엘, 엉큼한 녀석.”
딘이 다시 슬금슬금 침대에 눕기 시작했다. 이불과 베개가 없으면 어떠랴. 하지만 이번에도 가브리엘은 손끝으로 침대를 들썩들썩 거리면서 딘의 수면을 방해했다. 저 빌어먹을 천사! 저 혼자 들썩거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망할!’하고 신경질을 부렸다. 그런 딘을 보면서 가브리엘은 재미있다는 얼굴로 ‘오오- 무서워. 무서워.’하고 킬킬 거렸다. 저 정신 나간 천사의 가슴에 엔젤 소드라도 꽂지 않는 이상 그는 계속해서 딘을 괴롭힐 것이었다. 창밖으로 뛰어내리면 잠에서 깬다고 들은 것 같은데. 차라리 잠에서 한번 깬 다음에 다시 자는게 나을 것 같았다.
“아니야, 아니야. 너 잠에 드는 순간마다 내가 짠하고 나타날 거야. 차라리 빨리 처리하고 편하게 자라고.”
“그러면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용건을 말해.”
“솔직히 내가 이런 대접 받기엔 너무 부당하단 말이야. 난 널 돕기 위해 온 건데 말이야.”
“네 형제 놈들은 언제나 그렇게 말해. 그래놓고 사고란 사고는 전부 치고서 떠나지.”
“난 달라.”
“네가 제일 문제야.”
딘이 단언하자 가브리엘은 삐진 얼굴을 했다. 전혀 귀엽지 않은 얼굴을 딘이 빤히 바라보자 그는 ‘예전의 딘 윈체스터는 재미있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 돌부처가 됐네. 실망이다. 실망이야.’하고 목을 긁적거렸다.
“재미없는 상대로 긴 시간 끌어봤자 힘든 건 나니까.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지.”
그는 검지와 엄지로 딱-하는 소리를 냈다. 딘이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세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
존은 나쁜 아빠였지만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던지 또 어떤 모습으로 있던지, 모든 것을 떠나서 딘은 그를 사랑했다. 그는 딘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조금 더 깊숙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존 또한 딘을 사랑했다. 때론 샘으로 인해 딘을 꾸중하고 손찌검을 할 때도 있었지만 존은 딘을 사랑했다. 그는 존의 아들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자신을 위해 존이 목숨을 버리던 그 순간에 딘은 깨달았다. 보이는 것들과, 느끼는 것들과, 배신하는 것들과, 울게 하는 것들.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사랑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
“장난해?”
“장난 좋지. 인류 최고의 선물이야”
딘의 눈앞에는 아기 침대가 있었고, 그리고 그 안에는 샘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순간 이곳이 어딘지 헷갈렸지만 아기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았다. 이건 샘이었다. 샘은 자신의 발가락을 가지고 놀면서 옹알거리고 있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녹색 눈동자와 살짝 상기 되어 있는 동그란 뺨이 딘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아기는 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작고 오동통한 손가락이 딘을 향해 있었다.
“이봐, 안아 달라잖아. 네가 존이라고 생각했나봐. 좀 닮긴 했지만”
‘존이 좀 더 샤프가이인데 말이야.’ 가브리엘이 말했지만 딘은 아이를 안지 않았다. 그저 내려 볼 뿐이었다. 빌어먹을 천사들 때문에 몇 번씩이고 ‘백 투 더 퓨처’를 찍곤 했지만 이렇게 어린 샘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브리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딘을 보고 쯧, 혀를 차더니 손을 뻗어 샘을 안았다. 딘은 깜짝 놀라며 만류하려했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익숙하게 샘을 안아 들면서 ‘까꿍.’하고 웃긴 표정을 만들었다. 아기 샘은 순한 성격을 자랑이라도 하듯 깔깔 웃으며 통통한 손바닥으로 짝짝 박수를 쳤다. 천사 같은 모습에 가브리엘이 한탄했다.
“이렇게 작고 예쁜 아기가 어쩌다가 그런 사스콰치가 된 거야?”
그건 딘이 평소에 생각하던 내용이었다. 이렇게 어릴 적이 아니더라도 10대 시절의 샘은 예쁘장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샘이 집을 나간 이후로 그는 부쩍 크기 시작했다. 딘은 그런 샘이 야속하게 느껴지면서도 아쉬웠다. 딘은 옹알거리며 웃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다가 그 크고 올망한 눈과 마주쳤다. 아기 동생은 딘을 향해 또다시 손을 뻗었다.
“형의 품이 더 좋은가봐. 역시 동생들이란 형이란 존재들보다 훨씬 자비가 넘치는 족속이라니까.”
가브리엘이 미카엘과 루시퍼를 힐난하듯이 말했다. 그러나 딘은 그런 것들을 듣지 않고 있었다. 망설이던 손을 뻗어 샘의 작은 몸뚱이를 잡았다. 샘은 기다렸다는 듯이 딘에게 안겼다. 따뜻한 몸뚱이의 온도를 느꼈다. 자신의 손바닥에 감기는 작은 엉덩이와 자신의 옷자락을 잡는 작은 손바닥에는 어른들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이 있었다. 만약 자신과 리사에게 아이가 생겼다면 이만했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것은 ‘샘이 살아있다.’는 생각이었다. 움직이는 따뜻한 몸뚱이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딘이 샘의 오동통한 손을 잡아서 흔들고 있을 때 갑자기 가브리엘이 샘을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혔다. 딘이 어리둥절하게 자신의 비어있는 손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후다닥 방안으로 들어왔다.
“넌 어릴 적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지.”
3-4살로 보이는 아이가 폴짝 뛰어서 침대에 매달렸다. 그리고 짜리몽땅한 손을 뻗어서 ‘새미! 잘 잤니?’ 하고 인사했다. 작은 손끝이 동생의 뺨에 닿았다. 아이는 끝없이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알아듣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혼자 떠들었다. 어젯밤에 먹었던 바나나의 이야기. 옆집의 세라가 초콜릿을 선물로 줬다는 이야기. 하지만 너한테 양보 할테니 나중에 먹으란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브리엘은 ‘대단해.’하고 칭찬했다- 오늘 점심에는 엄마가 이발 해주기로 했다는 이야기. 너는 너무 어려서 자를 머리카락이 없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듣는 아기새미는 형과 눈을 마주치며 자신의 발가락을 쪼물딱거렸다. 딘은 동생이 입에 발을 넣으려고 하자 ‘안 돼 새미!’ 하고 발을 잡아주었다. 그게 재미있었던 모양인지 새미가 까르륵 웃었다.
“입에 발을 넣으면 안 돼. 발은 별로 깨끗하지 않거든! 하지만 네 발을 깨끗하니까 괜찮을지도 몰라.”
“1살이었던 너는 지금의 새미보다 훨씬 많은 횟수로 발을 빨았다고. 내내 발을 입에 넣고 살았지. 네 아빠는 종일 네 발을 씻겼어.”
가브리엘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손자 바라보듯한 눈으로 어린 샘과 딘을 보았다. 딘은 그게 탐탁지 않았으나 딱히 할 말도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딘이 대롱대롱 매달려 샘에게 잡담을 늘어놓는 동안 존이 들어섰다. 딘이 기억하는 존보다는 훨씬 젊었으나 어디서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철렁 놀라는 딘을 지나쳐 그는 어린 아들들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매달려 있는 딘의 뺨에 짧은 키스를 하며 ‘샘에게 무얼 말했니?’하고 물었다.
“발에 대해 말했어요! 샘은 하루 종일 발만 빨고 있는걸요.”
“하하, 딘. 네가 어렸을 때는 온종일 발을 입에 넣고 있었는걸. 그래서 아빠가 만날 네 발을 닦아줬어.”
“거짓말! 나는 그런 적 없어요.”
“진짜야. 엄마한테 물어볼까?”
아이 딘이 조금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존은 슬며시 웃어 보이며 샘을 안아 들었다. 그러자 딘은 자신도 안아 달라는 듯이 손을 뻗었다. 딘은 아차 싶었다. 어린 자신이 존에게 거절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의 기억처럼 그가 샘만을 품고서 문밖을 나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랐다. 그는 다른 한손으로 딘을 안았다. 그리고선 ‘딘, 많이 컸구나. 이제 아빠가 한손으로 안기 힘들겠어.’하고 말했다. 그 말에 다급하게 ‘딘은 아직 아기에요.’ 말했다. 존이 기분 좋게 웃으면서 두 아이를 안고 방을 나섰다. 딘은 존이 나가는 순간까지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이 그는 행복해보였다.
“생각해보면 정말 가혹해. 노아도, 모세도, 요셉도 성경에 기록된 위인들이 되었지만 아버지가 그들을 택하지 않았다면 아주 행복하게 고난 없이 살았겠지. 홍수도, 광야생활도, 감옥살이도 없었을 거야. 안 그래?”
그의 말에 딘은 매서운 눈으로 가브리엘을 노려보았다. 가브리엘은 성난 소를 대하듯이 손바닥을 펼치며 ‘워워-’ 소리 냈다.
“널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했잖아.”
“여기서 날 도와줄 일이 대체 뭐가 있는데?”
“샘을 위한거야.”
“뭐?”
가브리엘이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부딪쳤다.
*
딘은 딱딱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말라버린 풀들이 가득하고 저편에는 무덤들이 있었다. 천사의 얼굴을 조각한 대리석들을 마주하며 딘은 이곳을 기억했다. 샘의 마지막 순간이 있는 땅이었다. 딘은 샘이 나락으로 떨어지던 땅위에 서있었다.
“루시퍼와 가브리엘. 그리고 샘이 떨어진 땅이야. 딱 네가 서 있는 그 밑이지.”
가브리엘이 무덤가에 앉아서 말했다.
“물론 난 그 당시 죽어있었기에 직접 그 장면을 보진 못했지만 말이야. 아 실수. 물론 지금도 죽어있어. 높으신 분의 보좌 근처에 내 무덤이 있으니까 놀러와. 천사들은 가끔 거기를 성지관광 오곤 하거든.”
가브리엘의 헛소리에 딘은 인상을 썼다. 가브리엘은 샘을 떠나보낸 이후로 성격이 쪼글쪼글해진 딘이 잔소리를 하기 전에 벌떡 일어났다.
“내가 너한테 한 가지 자비를 베풀려고. 뭐 사실 이 자비를 거절하든 받아들이던 그건 네가 해야 할 거고 난 그냥 자비만 베풀면 되는 거야.”
가브리엘은 딘의 곁으로와 서성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샘은 이 아래에 있어. 땅속 빌라에서 옆집 루시퍼와 앞집 마이클을 감당하고 있지. 음식물 쓰레기를 앞에 내놓으면 마이클한테 얻어터질 거야. 만날 시끄럽게 울리는 루시퍼의 음악소리를 감당해야 할 거고. 그뿐 아니라 집에 쳐들어와서 샘을 매일 갈구겠지. 정신없이 살갗을 뜯어내는 탓에 아주 죽을 맛일 거야, 아마.”
“닥쳐.”
“하루에 몇 번씩이나 죽어나가겠지. 끝나는 순간 없이 눈을 뜨면 마이클과 루시퍼가 알랑거리며 신경질을 부릴 거야. 내 형들이라서 아는 건데 진짜 그 둘 성격 개 같거든. 특히 루시퍼가 더 특출하지. 루시퍼 이름의 뜻이 ‘새벽별’인거 알아? 아주 토 나온다니까.”
“닥쳐!”
“아직 본론도 시작 안했어. 난 네 동생을 도와주려는 거라고.”
“뭐 어떻게 하려고?! 샘을 구해주기라도 한다는 거야? 네가 말하는 개 같은 마이클과 루시퍼 사이에서 건져주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건 못해. 내 권한이 아니거든.”
“제기랄! 당장 날 집으로 보내줘. 당장!”
‘개 같은 성격에 너도 포함시켜줄게.’ 가브리엘이 귀를 파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딘을 보았다. 딘의 죄책감이 그의 심장을 파고들어 주인 행세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딘은 스스로를 자책하고 죽여가고 있었다. ‘가련하기 짝이 없네.’ 가브리엘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샘을 꺼낼 수는 없지만 그를 고통 받지 않게 해줄 수 있어.”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귀 먹었어? 네 동생이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지금은 카스티엘이 대장노릇하고 있으니까. 옛날 친구라는 명목으로 VIP 대접도 받을 수 있다고. 어때? 괜찮은 조건 아니야?’ 가브리엘이 손바닥을 펼치며 물었다. 딘은 그저 그런 가브리엘을 의심스럽게 노려볼 뿐이었다. 죄책감 덩어리 플러스 의심덩어리. 가브리엘이 중얼거렸다.
“천국으로 가면 괜찮을 거야. 우선 괴롭히는 악마새끼랑 천사새끼도 없고 자신의 행복한 방에서 즐거운 추억을 되새길 수도 있고. 잘하면 메리와 존도 만날 수 있겠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조건 없이 천국으로 보내준다고?”
“조건은 없어. 해야 할 일은 있지만.”
딘이 그 말에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말한 대로 이건 꿈이잖아. 꿈속에서 샘을 구제해준다고 한들 모든게 현실이 되겠어?”
“그럼 이건 어때. 이거 현실이야.”
“정말 말 그대로 개 같은 소리하고 있군.”
“한번 걸어봐. 나쁠 건 없잖아. 파스칼이 말한 거랑 똑같아. 신이 있으면 네가 천국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거고. 없으면 뭐, 없는 거지 뭐.”
“그래. 네가 말하는 해야 할 일이란 게 뭔데?”
‘이 타이밍이 제일 중요한 순간이었단 말이지.’ 가브리엘이 손바닥을 싹싹 비비면서 말했다.
“별로 어렵지 않아. 내가 전적으로 도와줄 거야. 계약서도 필요 없고, 누군가 지켜보는 사람도 없어. 재커라이어같은 천사 몇 명이 방해를 할 수도 있겠고, 노란 눈의 정신없는 악마 같은 놈들도 몇 있겠지만 그 정도야 내가 커버할 수 있지. 너도 알다시피 나 끝발나는 대천사잖아?”
“본론을 말해.”
“그래 본론 좋지. 그러니까 본론은 다시 샘 윈체스터를 죽이면 된다는 거야.”
‘어때, 어려운 일은 아니지?’ 가브리엘이 웃으면서 말했다.
*
사실 딘은 타인들의 시선으로 보나, 아니면 자기 스스로를 살펴보나 그다지 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이성은 있었으나 흔히 표현되는 ‘이성적인 사람의 표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감성적이고 격정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샘에 대해서는 다이너마이트 곁의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격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딘은 샘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울 때가 있었다.
‘지금 형은 아빠가 했던 것들을 모두 따라 하찮아! 올드 락! 가죽점퍼! 임팔라! 그 말투까지! 대체 지금 내 앞에 있는게 누구인거야?’
‘그 미련하게 남은 잔상은 집어치워. 난 어린애가 아니야!’
‘있잖아, 난 지금 형이랑 같이 일할 자신이 없어. 아니, 함께 마주볼 자신도 없어. 우리 잠깐 떨어져서 일하자. 우리 서로를 위해서.’
완곡한 표현이던, 날카롭게 찢어지는 표현이던 상관없었다. 샘이 내뱉는 말들은 딘에게 살인충동을 일어나게 하기도 했고, 때로는 자살충동이 일어나게 하기도 했다. 만약 그가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깊이를 안다면 샘은 매우 놀라워할지도 몰랐다. 이미 머리로 알고 있다한들, 직접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샘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딘을 모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가 딘의 곁을 떠난 적은 많았다. 그 빌어먹을 스탠포드도 있었고, 셀 수 없는 다툼도 포함되었다. 그때마다 샘은 딘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뒤돌아섰다. 딘은 자신의 상처에 고통스러워하면서 자신이 고통 입은 만큼 샘을 상처주고 싶어 했다. 자신이 죽을 정도로 아프면 샘도 죽을 정도로 아프기 원했다. 심장이 칼로 짓이겨서 난도질당하면, 샘의 심장도 그대로 난도질당하길 바랐다. 딘은 자신이 죽고 싶은 만큼, 샘도 죽고 싶어 하길 바랐다.
그러나 그건 순간이었다. 딘은 샘에게 죽어버리란 말도, 상처입고 갈기갈기 찢어져 나가떨어지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적인 폭발은 있을지라도, 그 폭발의 이후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딘은 바보가 아니었다. 샘이 죽을 만큼 아프다면, 결국 딘은 그 두 배로 아플 것이 뻔했고. 샘이 죽고 싶어 한다면, 딘은 샘의 몇 배로 죽고 싶어 할게 뻔했다. 샘이 아프길 원한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샘을 위한 천국은 이미 마련되어있어. 어린 샘이던 젊은 샘이던 상관없어. 루시퍼와 땅 구덩이에 떨어지기 전까지의 샘이면 되는 거야. 이해해?”
“죽은 애를 또 죽이라고?”
“솔직히 죽은건 아니지. 땅 밑에서 살아 있는 거니까. 뭐 그렇다 해도 죽일 필요는 없어. 그냥 죽게 내버려두면 되는 거지. 사실 너희들 몇 번씩이나 죽었다가 살아났잖아? 그러니까 딱히 총과 칼을 겨눠서 난도질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그냥 넌 가만히 있으면 돼. 샘이 베드로의 안내를 받을 동안에, 동생 살리겠답시고 난리치지 말고 나랑 닥터 섹시나 시청하면 되는 거라고.”
하지만 최근 샘이 저 땅 아래서 괴로움에 몸부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죄책감뿐이었다. 샘이 십자가를 지고 희생되었다는 사실. 그 영혼이 커다란 외로움을 감당하며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동생이 고통에 시달린다는 것은 정말 큰 괴로움이었다. 그러나 딘은 그 괴로움이 실감나지 않았다. 샘이 사무치게 그리웠고, 또 그에 대한 죄책감이 미치도록 힘들게 했지만. 감정의 아픔은 희미했다. 그리고 이것은 또 다른 죄책감이 되었다.
“네 고통만 감당하면, 샘은 편하게 천국에서 살 수 있어.”
‘결국 샘을 수없이 살려냈던 것은 너 자신을 위한 거였잖아?’ 가브리엘이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딘이 날카롭게 눈매를 올리며 그를 노려보았지만 가브리엘은 장난스럽게 받아들일 뿐 전혀 반성하는 기미는 없어 보였다. 딘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이건 악마들의 농간이 아닐까. 아니 천사들의 농간일 수도 있지. 색깔만 다를 뿐 똑같은 놈들이니까. 아니야 아니야 딘 윈체스터. 이건 꿈이야. 개죽음을 당한 가브리엘이 살아나서 판치고 다닐 리가 없지. 그래 최근에는 좀 피곤했지. 제기랄, 꿈을 꾸려면 복권 터지는 꿈이나 꾸지 이 개밥에도 못써먹을 꿈은 대체 뭐야?
“거참, 험하게 생각하네. 뭐 아무래도 좋아. 네가 거부한다면 그냥 네가 소원한데로 널 네 집 꽃무늬 침대에 던져두고 가면되니까.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나도 차라리 내 오동나무 관에서 잠이나 자는게 좋다니까? 좋은 일 좀 하려는데 참 협조도 안하시지. 솔직히 샘이 천국에 가면 네 엿 같은 죄책감도 덜고 얼마나 좋아?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너같이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해.”
“샘이 천국에 가고, 내가 빌어먹을 죄책감을 덜어서 너에게 이득 되는게 대체 뭔데?”
“그런거 없어.”
“지금 나 물 먹이려는 거야?”
“아까 전부터 똑같은 말만 하고 있는거 알아? 자비를 베푼다고! 자비를! 천사가 하는 일이잖아!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그리고 솔직히 말해봐. 천사가 하는 일에 이유가 있어? 아, 이건 취소. 이건 기원전에나 통할법한 말이네. 취소. 취소.”
가브리엘이 자신의 입을 툭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리고 다시 셀죽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마주했다. 딘은 이를 갈며 눈을 감았다.
*
어린 딘은 엄마에게 매달려 자신은 한 번도 발을 입에 넣은 적이 없다고 징징거리고 있었다. 메리는 심술궂게 갓난아기 적 딘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영락없이 아담하기 그지없는 발을 쪽쪽 빨고 있는 사진에 딘은 충격 먹은 얼굴로 존을 올려다보았다. 존은 샘을 안고서 웃고 있었다. 존과 메리의 심술궂은 장난에 딘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고매하신 자존심인지. 딘이 세상이 무너져라 울면서 자신은 입에 발을 먹은 기억이 없다고 크게 변호했다. ‘저놈의 똥고집이 어디서 나온지 알만하네 그래.’ 존이 여전히 킬킬 웃으며 말하자 메리는 그를 힐끔 노려보며 딘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는 뺨에 키스를 퍼부으면서 ‘딘. 이건 부끄러운게 아니란다.’하고 속삭였다.
“딘, 이건 부끄러운게 아니란다―”
가브리엘이 부담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메리의 말을 따라했다. 메리와 존의 얼굴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있던 딘은 가브리엘의 가증스러움에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아기 샘은 엄마의 품에서 엉엉 우는 딘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오동통한 손을 뻗어서 일관성 없이 딘의 머리를 부비적부비적 쓰다듬었다. 그저 젖먹이의 장난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형을 위로하는 의젓한 동생 같기도 했다. 딘은 샘의 작고 하얀 손바닥을 보고 있었다. 딘을 향해 쭈욱 뻗는 작은 손. 그 손을 잡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닌, 아이 딘이었다.
“그럼 여기로 데려온 진짜 이유가 뭐야. 네 말대로 날 돕기 위해서 과거 여행까지 시켜주는 거야? 너한테 도움 될 일이 하나 없는데?”
“사실 이건 과거 여행이 아니야.”
딘이 바라는 대답은 이게 아니었다. 딘은 가브리엘에게 마지막 확인을 하고 있었다. 정말 자신에게 이런 과거를 보여주는 이유. 단란한 윈체스터 가족의 행복한 일과를 선물하는 이유. 하지만 가브리엘은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전혀 딘이 생각하지 못했던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이건 천국의 일부야. 네 동생의 천국. 그 일부라고. 그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일부기도하고. 매우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지만 이건 내가 만들어낸게 절대 아니야.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사실이지. 아마 이 비슷한 게 너의 천국에도 있을 거야. 물론 너무 어렸을 때라 네가 기억 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도 아니니까. 이정도면 천국에서 살만하지 않아? 무진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가꿔져있다니까? 안드레센 동화나 그림형제의 이야기 속에 있는 갈등 클라이맥스도 없어. 그저 행복의 지평선이지. 네가 원한다면 샘의 천국을 더 둘러볼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기억해야할거야. 네가 더 고민하고 늦장 부릴수록 샘의 영혼은 더 피폐해진다는 거 말이야.”
딘은 아무 말 없었다. 시선을 돌려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이 상황이 매우 바보 같아졌다. 결국은 연장선이었다. 그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났던 여행이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한 발악이 되었다. 그리고 딘은 모든 것을 잃었다. 모든 것을 잃은 딘에게 가브리엘은 ‘네가 잃지 않은 한 가지가 더 있어. 바로 샘의 천국이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딘은 샘에게 묻고 싶었다. ‘샘. 너의 천국까지 내가 책임져야하는 거냐?’ 그러나 그 말에 대답할 샘은 없었다. 그저 아버지의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기 샘만이 까르르 웃고 있을 뿐이었다.
꿈이면 어떨까, 그리고 꿈이 아니라면 어떨까. 이런 것들은 상관없었다. 그저 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선택뿐이었음으로 딘은 대답해야했다.
“그런데 사실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말이야.”
가브리엘이 자신의 목덜미를 벅벅 긁으면서 물었다.
“이거 대답을 들을 필요 있는 거야?”
*
잠깐 지나가는 이야기를 하자면, 딘 윈체스터가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르는 이 상황은, 사실 꿈인지 현실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딘이 현실이길 바란다면 현실이 되는 것이고, 꿈이기 원한다면 꿈이 되는 이야기였다. 장난스러운 천사 가브리엘은 -정확히 죽었다 부활한 가브리엘은- 구름 무덤에서 일어났을 때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전히 신의 목소리는 숲속, 휘파람 섞인 꾀꼬리 울음 같았다. 가브리엘은 몸을 일으키며 딘 윈체스터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리고 샘 윈체스터의 결말을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에 대해서 예견했다는 것이었다. 마리아와 잔다르크에게 삶의 사다리를 내려줬던 천사의 예견은 틀릴 일이 없었다. 그는 확신했다. 딘 윈체스터가 종국에 듣는 매미 울음소리부터.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구름 무덤에 몸을 누웠을 때의 감각까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
퀴퀴한 냄새, 말라버린 풀들, 그리고 쩍쩍 갈라진 마른땅. 온 주변에 가뭄을 맞이한 텍사스마냥 말라 있었다. 그나마 탈수직전의 소들이 깔려있지 않다는게 다행이었다. 딘은 천천히 걷고 있었다. 땅을 밟을 때마다 서걱서걱 거리는 소리들이 들렸다. 결코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갈라진 두렁에 발이 푹 빠졌을 때 딘은 누군가를 향해 욕을 지껄였다. 그 욕을 듣고 우스꽝스럽게 슬퍼할 당사자가 없었으니 이득 될 일은 아니었다. 딘은 혼자였다.
가브리엘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딘을 끌고 왔다. 그리고 이곳에 던져두었다. 딘은 지금 걷고 있는 풍경과 별다를 게 없는 곳에 떨어졌다. 가브리엘의 망할 손가락 때문이었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딘을 향해 ‘현대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율성이 없다는 거야. 준다고 가정되는 것은 자율성이 아니라 방종의 기회지.’ 하고 말을 툭 던져 놓고 사라졌다. 가브리엘의 빈자리를 보며 딘은 그가 누군가에게 불려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문이라던가, 악마라던가 아니면 신이라던가. 그러나 수 시간 뒤, 가브리엘의 마지막 말을 생각해보자 이 모든 것이 그의 의도라는 것을 알아냈다. 결국 모든 것을 딘이 처리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놈의 거들먹거리는 자율성을 내세워서 말이다.
도움을 준다 해놓고서 몇 시간이나 사막에서 걷게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 뺨에 흐르는 땀방울을 느끼며 이것들은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중요한 생각은 아니었다.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딘이 계속해서 생각한 한 가지가 있었다. 여기가 어디일까. 아직 자신은 샘의 준비된 천국에 있는 걸까. 아니면 샘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다른 말로 샘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여기 있다는 걸까. 단발적인 생각들이 멈추지 않았다. 사막은 끝없이 이어졌고 딘은 끝없이 걷고 있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갈 동안에도 길은 변하지 않았다.
가브리엘의 말처럼 딘과 샘이 죽어나간 시간들은 많았다. 그가 농담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보다 더 많은 부활을 했으니 부활절 달걀을 몇 개씩 까먹어도 누구도 그들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우습긴 하지만 슬픈 이야기였다. 처음 천국 여행을 하던 그날에 딘은 더 이상 죽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창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미친놈들의 밥그릇이 되어 몸을 빼앗김 당하는 순간순간을 떠올리니 더럽고 추잡한 생각들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또다시 웃기게도 딘은 이 순간들이 샘과 함께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다. 이기적이지만 그랬다. 동생의 존재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우면서도 그 이상으로 위로되는 존재는 없었다. 샘이 딘의 전부임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어떤 죽음이었을까. 딘은 생각했다. 가브리엘의 말에 따라 샘의 죽음을 방치해야하는 그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 모습 변환자에게 목숨을 위협받았던 때였을까, 아니면 흡혈귀에게 목이 졸리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생명은 언제나 위태로웠고, 죽음은 언제나 가까웠다. 딘은 샘의 생명과 죽음을, 샘은 딘의 생명과 죽음을 지켜냈다. 형제가 서로의 손을 놓았다면 진즉에 끝나는 생명이었다.
다만 딘은 자신이 덜 괴롭길 바랐다. 샘의 천국이 보장되는 이 죽음의 길이 헛되지 않길 바랐다. 딘은 샘이 없다면 살아 갈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지만, 샘은 천국에 있음으로 살아가길 바랐다. 그래서 가브리엘이 기다릴 필요 없는 대답이란 놀림에 변명하지 못했다. 샘을 위한 것이라면 딘은 온 몸을 던질 수 있었다. 그것은 샘이 딘의 어떤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샘 윈체스터였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딘이 몇 시간 동안 정신없이 걸었을 때 먼 곳에서 비명이 울렸다. 그러나 바람에 쓸려가는 비명은 어디서 흘러온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딘은 그저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휘적이며 혼돈스러워 할뿐이었다. 대체 여긴 어디지. 샘의 죽음이 맞닿아 있는 장소를 자신이 잊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황량한 길은 기억나지 않았다. 딘은 그저 뛰기 시작했다. 딘의 연두색 체크 난방이 먼지바람에 펄럭거렸다. 몇 번의 비명이 다시 울렸다. 선명하지 않은 소리였으나 딘의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다. 달리고 달리다가 걸음을 멈춰 섰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딘의 곁으로 바람소리만이 흘러갔다. 가브리엘이 착각하고서 지옥에 던져 놓은게 아닐까. 푸른 어둠이 몰려들고 있었다. 하얀 천을 물들 듯한 어둠에 딘은 숨이 막혀왔다. 딘은 어둠을 등지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낡은 마을에 곳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뼛속까지 어둠이 스며든 시간이었다. 무너진 집, 거미줄, 낡고 썩은 통나무, 먼지가 굴러다니는 흙바닥. 그 모든 것들을 천천히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샘을 보았다. 바닥에 입 맞추고 있는 샘의 등 뒤로 박혀있는 칼날도 보았다. 그제야 딘은 이곳이 어디인지 기억하는 것이었다. 가브리엘의 말처럼 이것들은 참 쉬웠다.
*
10년 전의 일이었나. 딘의 머릿속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딘은 이것을 잊고 살았다. 사람은 망각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동물이라고 하더니 그것 하나만큼은 정말 맞는 모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잊은 것은 아니나 잊으려고 노력했던 기억이었다.
지금 딘의 앞에 누워있는 샘은 마치 자는 것 같았다. 아마 그때에도 딘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그 빌어먹은 노란 눈의 악마가 실행했던 농간은 샘을 죽음으로 쳐 몰았었다. 어둡고 외로운 오두막에 바비와 함께 샘을 눕히며 딘은 ‘언제까지 잘 거냐. 이 멍청아.’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샘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딘이 수많은 말들을 지껄이고 투정을 부릴 동안에도 샘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야 가브리엘이 말하는 천국의 의미를 알았다. 결국 그것은 딘의 지옥이었다. 샘이 천국으로 가는 대신 딘은 지옥에서 평생을 살게 될 것이란 의미였다. 샘은 이곳에서 죽고 더 이상 부활하는 일 없이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딘은 이곳에서 영원히 샘을 잃어버리고 혼자 헌터 일을 하고, 혼자 사람들을 구하고, 혼자 임팔라를 타고 다니는 것이다. 그 이전에 샘과 있던 이야기들은 모두 사라지고 샘을 위해 지옥에 갔던 일도 사라진다. 카스티엘을 만날 일도 없을지 모르고 어쩌면 조가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빌어먹을 루비년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간단했다. 딘이 가지고 있는 샘과의 추억은 모두 사라지고 딘은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살아갈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실 정말 괜찮은 조건이었다. 비록 딘이 가브리엘을 믿지 못하고서 그를 타박하며 당장 꺼지라고 소리쳤어도 딘은 그 순간을 바래왔을지도 몰랐다. 언젠가 어떤 천사가 떡하니 나타나서 과거로 돌려보내주겠다고 붙들어 주기를. 누구든지 좋으니까 샘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해주길. 샘이 고통 없이 천국으로 간다면 이 정도 고통은 괜찮았다. 확실한 답만 정해진다면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끄러운 말을 제법 중얼거렸던 거 같은데”
딘은 샘을 멀뚱히 보면서 중얼거렸다. 앳된 이마에 어둔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떠들었던 말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아마 샘에게 ‘네가 영원히 어린아이길 바랐는데.’ 따위의 간지러운 말이었던 것 같았다. 그땐 정말 고통스럽고 견딜 수가 없었다. 내장이 눈물로 젖어 들여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이토록 가만히 앉아 죽어버린 동생을 보고 있었다.
딘은 가브리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가브리엘이 딘을 데려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다시 현재로 돌아갔을 때, 딘은 리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호텔에서 총을 닦고 있을지도 모른다. 샘도 리사도 없는 미래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딘은 샘이 천국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위로 받기로 했다.
가만히 가브리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고, 샘의 얼굴위로 새벽의 여명이 다가올수록 딘은 견디기 힘들어 졌다. 두려움이 스며들고 온몸에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얼어있는 손을 끝없이 쓰다듬고 매만졌다. 고문 같은 매만짐에도 손은 뜨거워지지 않았다. 점점 빛에 뚜렷해지는 샘의 얼굴을 딘은 결국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보지 못했다. 눈감은 동생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동이 틀 때까지 가브리엘은 오지 않았다.
*
딘은 소리지르며 가브리엘을 욕했다. 목에 핏대가 섰다. 이럴 줄 알았다며, 이렇게 배신할 줄 알았다며, 단지 샘은 여기 죽어있을 뿐이고 그가 천국으로 갔는지 지옥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소리 질렀다. 가브리엘은 오지 않았다. 완벽한 아침 햇살은 먼지와 함께 샘의 얼굴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딘은 죽어버린 동생과 한자리에 있었다. 점차 샘의 몸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흙이 될 준비를 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이미 흙이 되어가고 있었다. 샘의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딘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딘이 곁에 있던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 위에 있던 낡은 유리 재떨이가 쿵 떨어졌다. 쩍하고 갈라지며 산산 조각이 나버린 유리 잔재를 딘은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박힌 하나의 조각을 보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생명의 끝. 딘은 샘을 땅에 묻어야 했다. 땅을 파고 그를 그 안에 넣어 흙을 덮어야 했다.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코 샘을 묻을 수 없었다. 그를 다시 땅속으로 처박을 수 없었다. 고집스러운 얼굴도, 뭘 먹었는지 형 몰래 커버린 몸도, 딱딱한 손가락 마디도 결코 땅속에 처박을 수 없었다. 딘은 그럴 수 없었다.
또다시 선택이었다. 선택해야했다. 이것은 가브리엘이 지시한 선택이 아니었다. 딘의 싸움이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어린 동생을 차갑고 한기 서린 땅속에 묻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주 간단한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샘의 몸에 내려앉았다. 험한 손길로 파리를 내쫓았다. 그러자 또다시 어딘가에서 파리가 날아왔다. 한두 마리의 파리들은 점점 썩어가는 육체를 향해 날아들었다. 딘은 처절한 몸짓으로 파리들을 내쫓았다. 그러나 그것들을 내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딘의 눈물겨운 몸짓에도 그들은 결코 먹잇감을 떠나지 않았다. 파리들의 안식처가 되어버린 샘의 몸뚱이를 보며 결국 딘은 먹먹한 신음을 뱉어냈다. 가만히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샘의 죽어버린 시신 앞에서 얌전히 앉아 있을 수 있다고? 아니 그건 모두 거짓말이었다. 땅에 묻기 싫어서 샘의 천국을 포기하는 거라고?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샘을 위해서 모든 추억을 지워버리고, 그 없는 삶을 감당 할 수 있다고?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모두 거짓말이었다.
*
딘은 구석에 박혀있던 임팔라를 찾아냈다. 그리고 정신없이 트렁크를 뒤졌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곳에는 잡다한 물건들과 딘이 찾으려는 물건이 섞여 있었다. 딘은 그것들을 가지고 정신없이 차를 몰았다. 이미 딘의 눈에는 흥분과 고통이 고여 있었다. 딘은 내달렸다.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토해내면서 그는 달리고 달렸다. 머지않아 눈에 익은 곳에 도착하자 그는 트렁크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지갑을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가든파티 전에 맥주를 사러갔던 탓에 다행히 주머니에 지갑이 있었다. 딘은 지갑 안에서 리사 그리고 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찾아냈다. 그 사진 속에서 자신의 얼굴만을 북- 찢어서 상자 안에 담았다.
딘은 교차로의 중간으로 걸어가 땅을 파 상자를 묻었다.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교차로는 텅 비어 있었다. 그저 텅 빈 공간과 은은하게 빛나는 옅은 안개만이 있을 뿐이었다. 딘은 소리쳤다. ‘나와!! 나오라고!!’ 그의 거친 외마디는 웽웽 울려 퍼졌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딘은 자신이 빼먹은 것이 있나 생각했다. 그는 상자를 꺼내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땅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땅에다 묻었는데도, 상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딘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끝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의 손톱 사이에 피가 스며들고 손가락이 자갈에 찢겼음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여기까지였다. 모든 것에 연연한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해놓고서 샘 죽음 앞에서 또다시 무너지는 것이다. 한번 경험했다 하더라도 바뀌지 않았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딘은 그대로 무너졌다. 10년 전이든 100년 전이든 상관없었다. 샘의 죽음은 언제나 딘을 괴롭게 했다. 샘의 죽음 자체에 무뎌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처는 아무는 일이 없었다. 부패되는 시신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어찌 그의 죽음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땅을 파는 동안에 딘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괴롭다 말하지 않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괴로웠다. 외롭다 말하지 않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외로웠다.
딘은 땅을 파던 손을 멈췄다. 그저 그는 덜덜 떨며 울었다. 소리 내어 엉엉 우는 것은 샘을 떠나보낸 뒤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땅 아래에 샘이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죽고 싶어졌다. 참을 수 없는 죄책감들이 딘의 몸을 파고들었다. 샘은 죽어서조차 괴로운데, 자신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나마 샘의 천국을 만들어 주겠다는 가브리엘의 제안까지 밀어내며 샘이 다시 지옥에 처박히는 길을 선택했다.
여기서 샘이 살아난다면, 샘은 다시 루시퍼, 미카엘과 함께 땅에 처박히게 될 것이었다. 영원한 지옥에서 죽어갈 것이었다. 그러나 딘은 이 순간 샘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의 시신이 부패하는 것도, 자신의 손으로 동생을 묻는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토기가 밀려올 정도로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의 새빨간 손등위로 눈물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매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맴맴. 찌르르르 맴맴. 귀를 따갑게 울리는 매미 소리 덕분에 딘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딘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소리 중 가장 커다란 소리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