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프리도는 정신질환 요양원에서 어떤 시절을 보냈다. 말이야 요양원이었지 시한폭탄들의 무덤이나 마찬가지였다. 춥고 고독했으나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그는 미치지 않았었다. 지금의 새벽도 그렇고 그때의 새벽에도 그랬다. 막 현장 요원으로서의 시작을 열었었지만 일이 꼬였고 서커스는 그를 보호해야했다. 단출한 쪽지 하나가 전해졌다. 짐은 쪽지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다. 그게 ‘베드로 요양원’이었다. 요양원의 사람들은 짐의 존재를 몰랐다. 서커스는 그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덕분 정해진 시간에 따라 상담을 해야 했다. 심문할 때 사용되는 전기의자에 앉혀서 치료 목적이라는 헛소리를 듣기도 했다. 다행히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차가운 공기와 텅 빈 시선들은 오히려 편안했다. 새벽을 깨우는 비명소리와 하룻밤 사이에 죽어나가는 시신들을 지켜보는 것도 괜찮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매번 돌아오는 상담시간과 미사시간이었다.
의사들이 어떻게 지내냐고 물을 때면 형편없이 자란 손톱을 뜯어내며 ‘내가 미쳐 보입니까?’하고 물었다. 의사는 ‘전혀’라고 대답했고 짐은 웃어보였다. 쳇바퀴 도는 대화였지만 피할 수 없었다. 차라리 미쳤으면 나았을까. 미사 시간은 더 했다. 성찬식 때마다 혀 위로 작은 빵 한조각과 소량의 포도주가 흘러내렸다. 구석에 처박혀 서류를 처리하고 있을 남자가 생각났다. 대학 미사 시간 때마다 안타까울 정도로 졸아대고, 신이 없다는 증명으로 여자들을 꾀려던 한 남자가. 그래서 그가 미인과 함께 했던가. 그것은 떠오르지 않는다. 눈을 감고 꾸벅이던 모습과 여자들 앞에서 화사하게 웃던 모습만이 생각날 뿐이었다.
그것이 괴로운 걸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근원의 정체성이 그렇듯 모른 척 하면 할수록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전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겐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곳에는 작은 남자가 하나 있었다. 막대기로 후려치면 단방에 부러질 것 같은 몸매와 창백한 낯짝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신경증이 조금 있다고 말했지만 의사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자살 중독증 환자였다. 손목을 긋는 횟수가 무색하도록 살아남았다. 관리자들은 그냥 그가 죽기를 바랐던 것 같다. 짐 또한 그랬다. 자신은 살아 보겠다고 멀쩡한 정신으로 이 좆같은 곳에 눌러 붙어 있는데 이 남자는 멀쩡한 사지로 죽겠다고 난리였다.
짐이 요양원에 들어간 지 1년 즈음이 되던 해였고 그가 들어온 지는 1개월 남짓 안 되던 시기였다. 그가 흙바닥의 참새 똥 마냥 짐에게 늘러 붙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짐은 신경 쓰지 않았다. 우습게도 남자 또한 그랬다. 남자에게는 납 냄새가 났다. 비정상적으로 하얀 피부 때문에 발라지는 납 가루는 드러나지 않았다. 짐 프리도만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짐은 남자의 침대 밑을 뒤져 붓꽃이 그려진 낡은 분통을 찾아냈다. 자신의 분통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남자는 경기(驚氣)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았다. 애걸했다. 짐은 의자에 앉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서너 명의 장정이 붙어도 끝나지 않자 슬그머니 다가가 보이지 않게 남자의 명치를 내리쳤다. 사람들이 짐을 때어내기도 전에 남자는 정신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새벽녘이었다. 벽을 두들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짐을 불렀다. 대답하지 않았지만 남자는 상관없다는 듯이 분통을 찾아달라고 했다. 할 수 있을 거다. 너는 눈치가 빠르고 예민한데다가 사고 없이 지내는 터라 의사들이 신뢰하니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대답하지 않고 창문을 보았다. 날씨가 흐려 빛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짐과 남자의 애걸이 반복되었다. 남자는 제대로 먹지도 않았고 자지도 않는 듯했다. 하얗던 얼굴이 파리하게 말라갔다. 이번엔 굶어 죽기로 한 모양이라며 관계자들은 혀를 찼다.
예민한 잠귀 탓에 매번 깨긴 했지만 그 순간이 짜증스럽지 않았다. 어둑한 시야로 천장을 보고 있을 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처절한 목소리로 애원해오긴 했지만 울먹였던 적은 없었다. 차가운 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아. 그 가루가 좋아. 그 냄새를 맡으면 편해져. 그 함이 좋아. 날 편안하게 해. 매일매일 죽고 싶어 환장한 인간치고는 제법 사람 냄새가 풍기는 이야기였다. 짐은 매트리스 틈으로 쑤셔 넣었던 분통을 잡았다. 어둠 사이로 보이는 꽃문양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래쪽으로 뭉근한 감촉이 느껴졌다. 송곳 따위로 글씨가 파여 있었다. 여자의 이름이었다. 요즘 여자들은 납 가루를 쓰지 않지. 울음이 잦아들고 고요의 시간이 찾아왔다.
함이 누구의 것인지, 그의 할머니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물건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랬다. 물건을 돌려준 이후 한 달이 안 되어 남자는 죽었다. 납중독이었다. 정확히는 섭취였다. 관계자들이 둘러 싸여진 틈으로 납자의 입에 묻어있는 가루 더미를 보았다. 크리스마스가 이틀 남았던 때였다. 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와 아기를 굽어보는 마리아 인형이 놓여 있었다. 짐은 그날 처음으로 옛 친구를 잊을 수 있었다. 울리는 신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인형들에게서 눈을 땔 수 없었다. 인형들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다. 마치 납 가루를 바른 것처럼 그랬다.
새해가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곳을 나올 수 있었다. 스마일리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느꼈다. 결코 주워 답을 수 없는, 주워 담을 수 없었던 시간이 미쳐가는 사람들의 다리 밑으로 흘러내려버렸다. 저도 모르게 거친 손등으로 눈가를 가렸다.
이때를 자주 돌이켜 기억하진 않았다. 인생은 연속되는 풍파였고 죽음의 칼날들 위에서 휘청휘청 걸어왔다. 하지만 가끔씩, 어쩌면 꽤 많이 그 당시가 기억나곤 했다. 미사 때마다 졸고 있는 빌 헤이든의 옆모습을 생각했던 것과 같았다. 시각과 후각은 자꾸만 회귀 시켰고 속절없이 끌려 들어갔다. 이런 새벽이면 더욱 그랬다.
짐이 돌아온 뒤로 빌은 짐의 부재에 대하여 민감하게 굴었다. 짐을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쯤은 알고 있었다. 빌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듯 무뚝뚝한 목소리로 ‘다녀오게나.’하고 말했다. 가까이 다가가 그의 손에 깍지를 끼고 서늘한 온도를 나눠주었다. 다가서는 입맞춤은 언제나 어색했다. 섞이는 혀는 뜨겁고 난폭했지만 행위 자체의 어색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에서 위안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빌 헤이든이 자신의 부재에 불안해 한다는 것. 자신은 죽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빌이 자신의 부재에 불안해하지 않는 시기가 오고, 서글픈 입맞춤이 사라지고, 죽음의 문턱이 코앞에 오더라도 어찌할 도리 없었다. 그 순간을 예견한다 하더라도 짐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랬다. 다시금 이런 새벽처럼.
허리를 껴안아 오는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짐은 옆으로 누워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자마를 가르고 들어와 맨살을 쓰다듬는 손가락이 결국에는 바지 입구를 슬쩍 열어왔다. 짐은 그 손을 잡으며 마주 누웠다. 입맞춤은 뜨거웠으나 어설프지 않았고 서글프지도 않았다. 살짝 열어둔 창문에서 비 비린내가 났다. 벗겨지는 빌의 코트에서 양주 냄새가 났고 그의 피부에서 달큼한 분내가 났다. 짐은 웃었다. 어둠이 시야를 가려 연인은 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어둠은 언제나 고마운 존재였다.
예사 이렇게 시작된 잠자리는 언제나 난폭했고 한쪽이 아닌 서로가 지쳐 떨어질 정도가 되어야 끝나곤 했다. 숨을 가다듬는다 싶으면 둘 중 하나가 다시금 입을 부딪혀왔다. 오늘은 빌이 먼저였다. 손길하나 숨길하나 모두가 급했다. 짐은 그것에 오롯이 맞추며 서로의 숨이 끊어지기를 기대했다. 깊은 새벽이 도달했다.
짐은 앉아서 어둠을 보고 있었다. 빌은 그런 짐의 허벅지에 누워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땀이 식어 살갗이 차가웠다. 빌은 바닥에 널브러진 코트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지만 빈각만 구겨져 있을 뿐이었다. 결국은 포기하고 다시 짐의 허벅지에 머리를 눕혔다. 움직임에 정사와 땀 냄새가 은은히 풍겼다. 그 사이에서 납 냄새와 비슷한 분내가 난다고 느꼈다. 노곤한지 빌은 눈을 감고 짐의 호흡을 느끼고 있었다. 어스름하게 들어오는 빛에 빌의 뺨이 빛났다. 마르고 차가운 손으로 빌의 뺨을 만졌다. 그 손 그대로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었다. ‘뭐 하는 거야?’ 빌이 물었다. ‘자살시도.’ 짐이 말했다. 잠시의 침묵 뒤에 빌이 웃었다. 그리고 짐의 목을 끌어 내리며 입을 맞춰왔다. 눈을 감았다. 들이마시고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