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헤이든은 이른 아침마다 환상을 조우한다. 짐은 폭 넓은 타이를 매고 있다. 그건 빌이 가장 싫어하는 모양새였다. 타이를 매는 것이 서툴진 않았지만 근사하지도 않았다. 아주 바쁜 아침이 아닌 이상 빌은 타이를 고쳐 매주었고 그는 편안하고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쁘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아니, 사실은 아주 좋았다. 정말 좋아서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전두엽을 대패로 밀어버리고 싶었다.
몇 번이나 깜빡여도 환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박제된 매 한 마리가 각막에 붙어있는 것 같았다. 빌은 온몸에 힘을 풀고 앞을 응시했다. 멈추어버린 환상 속에 자신의 삶이 스며들 수 있도록 한참이나 멈추어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눈을 감았고 오늘치의 환상은 그를 놀리듯 사라졌다. 빌은 걸음을 움직여 주전자를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파란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다 둔탁한 소리에 얼굴을 돌렸다. 비가 오고 있었다.
03.
한번, 집으로 꼬마 아이들이 찾아왔다. 무슨 콘셉트인지 몰라도 얼굴에 검정을 치덕치덕 바른 아이들이었다. 빌은 당혹스럽다는 듯이 아이들을 내려다보았고 아이들 또한 멀대같은 두 남자의 등장에 소리를 줄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냥 갈까?’ 커다란 마녀 모자를 쓴 여자아이가 소곤거리며 말했다. 아이들을 훑어보고 있던 짐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기다리라고 하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버렸다. 침묵이 흘렀다. 마트에서 옆집 남자를 만났던 그 때 이상으로 어색한 기류였다. 짐이 언제 돌아오나 안쪽을 기웃거리는데 검정을 가장 많이 묻힌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줌마는 없어요?’ ‘그래.’ ‘아저씨 둘만 있어요?’ ‘그래.’ ‘왜요?’ 빌은 입을 다물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물음에 어떻게 하면 가장 치욕적인 대답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 와중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딴걸 왜 물어보냐는 투닥거림이 일어나고 있었다.) 소란 가운데 짐이 나타나 아이들의 호박 바구니에 계피 사탕을 쑤셔 넣고 있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구겨지는 것이 보였다. 가득 넣어줬으니 너무 싸돌아다니지 말고 집으로 가라며 짐은 아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터덜터덜 아이들이 가는 길까지 마중하며 손을 흔들어 준 뒤에 돌아왔다.
‘계피사탕? 진심이야? 기껏 해봐야 7년산일 악마들이 계피 사탕을 좋아할 것 같아?’ 읽고 있던 책을 내리며 빌이 말했다. ‘각설탕하고 계피사탕밖에 없었어. 설탕보단 사탕이 낫지.’ ‘각설탕이 백배 나았을 걸.’ 빌이 고개를 흔들면서 활자로 시선을 돌렸다. 한동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익숙한 향내가 흐른다 싶더니 시야로 하얀 머그잔이 들어섰다. 피부로 달라붙는 따뜻함을 느끼려는데 차가운 발 하나가 허벅지 사이로 들어왔다. 빌이 노려보았다. ‘진심이야?’ 반복되는 말버릇에 짐이 웃었다.
짐의 발은 정말 차가웠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언제나 차가워 빌을 질색하게 만들었다. 상대가 질색을 하든 말든 짐은 곰살맞게 웃으며 소파의 반대편에 앉았다. 빌은 담요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짐의 발등을 꼬집었다. 서로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긴 시간 가만 책을 넘기며 읽었고, 짐은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댄 채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까 전에.’ ‘어.’ ‘아줌마가 없냐고 묻더군.’ ‘아줌마?’ ‘이 집에 아줌마가 안사냐고.’ ‘그래서?’ ‘대답해주기 전에 자네가 계피 폭탄을 들고 왔지.’ 짐이 눈을 감은 채로 피식 웃었다. 목소리가 나른하게 울렸다.
‘하나 데려올까?’ 안경을 고쳐 쓰며 짐을 보았다. 여전히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당장에 잠든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빌이 삐뚜름한 입을 열기 전에 짐이 혀를 굴렸다. ‘털 길고 주둥이가 길었으면 좋겠어. 그게 우아하니까. 순해도 좋고 조금 사나워도 나쁠 것 없지. 그래도 연속 짖으면 옆집 남자가 칼을 들고 쫓아 올 테니 조용한 놈이 나을 거야.’ 그 말에 빌이 웃었다. ‘사나운 놈이 차라리 나아. 물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이번엔 짐이 웃었다. 침묵이 흘렀다. 아주 편안하고 부드러운 침묵이었다. 곧 이어 숨 고르는 소리가 울렸다. 담요 아래로 따뜻해진 발등이 느껴졌다. 몇 번이고 까슬한 발등을 쓰다듬었다.
04.
나는 자네의 한 조각을 가지고 사는 거야.
빌은 대수롭잖게 ‘나 또한 자네의 조각 하나를 가지고 사는 거지.’ 하고 말했다. 짐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스운 만담이나 마찬가지였다. 매번 똑같은 소리를 하면 똑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짐은 수정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서 빌도 고개를 끄덕였다.
05.
비가 와서 그런지 지각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들어서는 무리들을 무시하곤 계속 혀를 놀렸다. 입으론 술술 말들이 튀어나갔지만 머리는 멍하고 흐렸다. 찌릿한 두통까지 동반했다. 어둔 표정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이내 대수롭잖은 척 책을 들었지만 활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덮었다.
들어오자마자 나가야하는 몇몇이 삐질거리며 빌의 앞에 섰다. 빌은 고개를 저었다. 낭패감이 가득한 얼굴로 애원했다.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포기하고 나가는 등을 빤히 보다가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누군가 강의실 문을 두들겼다. ‘열려 있는 것 모르나.’ ‘예의라는 거죠.’ ‘꼴에.’ ‘꼴이 이러니 더 예의를 지켜야지요. 오늘은 일찍 끝났네요. 어라? 얼굴이 좀 창백한데요? 어디 아파요?’ 빌은 고개를 저었다. 강의실을 벗어나니 뒤를 따라 붙었다.
‘여기 싸인 좀 해주세요.’ 빌은 주머니에 있던 펜을 꺼내 대충 이름을 갈겼다. ‘어때요?’ ‘뭐가.’ ‘아침에 보는 유령이요. 오늘도 봤어요?’ 힐끔 보니 아주 신이 나 있었다. 아니 늘 저런 얼굴이었다. 찢어지듯 올라간 입술이 섬뜩하게 느껴지곤 했으나 다른 이들은 그게 매력이라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음에도 저쪽에선 질문하기에 바빴다. ‘아침마다 만나는 유령이라니 좀 로맨틱하네요. 여자라고 했던가요? 남자? 얼굴은 어때요? 예쁘나?’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촉새마냥 쪼아대니 성질이 차올랐다.
‘아무 일도 없어요? 막 기다란 손톱으로 달려든다거나 아니면 컵 따위를 날린다 거나요.’ ‘어떻게 하면 날 내버려두겠나.’ 빌이 멈춰 서서 말했다. ‘대답을 해주면요.’ ‘대답해주면 날 놔줄 건가.’ ‘그러죠 뭐.’ ‘좋아. 아침이면 식탁 의자에 앉아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지. 아주 유령답게 가만히 앉아서 움직이지 않아.’ ‘그 다음은요?’ ‘그 다음? 그래, 그 다음. 나는 이렇게 눈을 지그시 감고 상상을 하는 거야.’ ‘무슨 상상을 하는데요?’ 우스꽝스럽게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앞에 있는 사내를 보며 아주 활짝 웃었다. ‘그를 목 졸라 죽이는 상상. 목구멍에서 피를 토하도록, 눈알이 뒤집히도록 아주 고통스럽게 목 졸라 죽이는 상상. 어때. 대답이 되었나?’
06.
장례식은 그의 고향에서 이뤄졌다. 짐의 부모는 그가 어릴 때 모두 돌아가셨고 유일하게 남은 것은 5살 차이의 여동생 하나였다. 그녀는 식을 준비했다. 목사에게 전화를 했고 그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를 주문했다. 꽃을 사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빌은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일시와 장소를 말해주었다. 빌은 목 끝까지 올라오는 욕설을 참았다. 그가 살았던 곳은 여기야. 여기서 숨을 쉬고 살아갔어. 엿 같은 그 동네의 네가 아니라 여기서 나와 늙어갔다고. 나는 그곳에서 손님이 아니야. 나는 그에게 손님이 아니야. 나는 아니야. 낭랑한 목소리가 빌을 불렀을 때 수화기를 내던졌다. 눈물이 뺨을 뒤덮었다. 너른 소파에 남겨져 찌그러지듯 온 몸을 끌어안았다. 나는 손님이 아니야.
07.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쏟아져 내릴 모양이었다. 유리창을 두들겨 패는 빗줄기에 곱지 못한 한탄이 나왔다. 한숨을 쉬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자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로 옆, 차에 탄 어린 녀석이 커다란 초콜릿을 먹으며 빌을 보고 있었다. 벽돌을 들고 있는 줄 알았다. 입에는 초콜릿이 떡칠이 되어 있었고 눈은 흐리멍덩했다. 이 비오는 날에 창문 열고 입술에 초콜릿을 바르고 있나. 빌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초콜릿이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곧 고막을 때릴 소음에 대비했다. 빌어먹을 신호. 지지리도 지랄 맞지. 그러나 울음소리 대신 문 열리는 소리가 들었다. 도로 한복판에 녀석이 초콜릿을 줍겠다고 내려선 것이었다. 당황했다. 앞좌석에 타고 있던 부모들은 어디다 정신을 팔고 있는 것인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곧 신호가 바뀔 것 같았다. 빌이 빵빵 클락션을 울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욕지거리를 뱉으며 문을 열고 아이의 앞에 섰다. 녀석의 손에는 조각난 초콜릿들이 들려 있었다.
멍청한 애새끼, 멍청한 초콜릿. 문을 거칠게 열자 앞에 있던 남녀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빌은 아이를 앉혀 놓으며 애새끼하나 제대로 안보고 뭐하는 거냐 욕을 내지르곤 문을 닫았다. 허겁지겁 자리에 올라타려는데 옷자락이 잡혔다. 뒤를 돌아보니 창문 너머로 아이가 빌을 붙잡고 있었다. 주섬주섬 차안에서 무언가를 줍더니 조각난 초콜릿을 건넸다. 무시하고 차안으로 들어섰다. 신호가 바뀌어 페달을 밟으려는데 누군가 불렀다. 말간 얼굴이 코앞에서 빌을 보고 있었다. 그 뒤로 허겁지겁 내리는 부모가 보였다. 아이가 다시금 초콜릿을 내밀었다. 가장 커다란 조각이었다. 쪼개진 초콜릿 중에서 가장 커다란 조각이었다. 부모들은 아이를 낚아채듯 차안으로 쑤셔 넣고 저만치 가버렸다. 달려가는 차 꽁무니를 멍청하게 보다 골을 울리는 클락션 소리에 핸들을 붙잡았다.
08.
‘들었나?’ 짐의 물음에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직장, 괜찮은 가족을 꾸리고 사는 듯 보였다. 성질머리는 더러웠지만 대놓고 문을 두들겨대진 않으니 그것대로 족했다. 좋은 이웃은 아니었지만 서로 사는 것에 바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죽었을까?’ 짐이 물었다. ‘살기가 싫었나보지.’ 빌이 대답했다. ‘살기 싫으면 죽을 건가?’ 짐이 놀란 듯이 물었다. ‘살기 싫은데 계속 살 건가?’ 빌이 실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도 태어났으니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지.’ ‘그 죽을 때라는 것이 살기 싫어지는 때라는 거지.’ ‘살기 싫어지는 때가 언젠데?’ 빌은 생각하는 척 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자네가 나보다 먼저 죽을 때겠지.’ 하고 대답했다. 능글맞은 웃음을 던졌으나 짐은 웃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없겠군, 나는 누구와 달리 저혈압도 없고 체지방도 덜하거든.’ 민감한 이야기에 빌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제야 짐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는 하지 말라고 말했다. 빌은 들은 체 하지도 않고 창문 너머로 옆집을 보았다. 깜깜했다.
09.
아침은 수없이 반복된다. 죽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이 지난 후에 죽는 것이 좋을까 아침이 오기 전에 죽는 것이 나을까. 우문이었다. 빌은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컵을 매만졌다. 너무나도 지쳤다. 머리통이 지옥의 구덩이로 쑤욱 빨려 들어갈 만큼 노곤하다. 그토록 목 졸라 죽이고픈 유령이 사라진다면, 살아가야하는 걸까 아니면 죽어야하는 걸까. 아니 지금 이 순간 살아는 있는 걸까. 빌은 이것 또한 우문이라고 마무리 지었다. 우문에는 아무런 대답도 필요 없는 법이었다.
10.
그리고, 환상은 보란 듯이 나타나지 않았다.
11.
그 다음 날도
12.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13.
빌은 짐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기상 캐스터는 종일 비가 올 것이라며 지겹다는 듯 눈알을 굴려댔다. TV를 끄자 적막이 찾아왔다. 빌은 창밖으로 흩어져 내리는 빗물을 보고 있었다. 청승맞게 울어댄 탓에 눈 밑이 따갑고 콧속이 축축했다. 덮고 있던 담요를 들췄다. 자신의 초라한 허벅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을 괴롭히던 차가운 발도 까칠한 발등도 없었다. 머리를 기대고 눕듯이 앉았다 차가운 비 그림자가 얼굴로 흘렀다. 눈을 감자 침묵이 들렸다. 그렇게 잠들어 버렸다.
눈을 떴을 때는 시간이 꽤 지난 듯싶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비구름 때문에 아까전과 별 다를 바 없어 실감하기 어려웠다. 빌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부엌으로 발길을 돌렸다. 냉장고를 향해 다가가려 했을 때 시야로 투명한 물체가 밟혔다. 빌이 가장 못마땅해 하던 타이를 매고 있었다. 인상을 쓰듯 내리깐 시야 끝에는 종이 뭉치가 있었는데 기억이 맞다면 청구서들이었다. 빌은 시선을 때지 못하고 시체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 그것들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처음에는 애달프고 서글픈 감정들이었다. 그리고는 분노가 찾아왔다. 한 번의 깜빡임으로 사라진 환상을 향해 빌은 폐가 시커멓게 변하도록 지독한 폭언들과 저주를 퍼부었다. 식탁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거칠게 쓸어내리고 깨뜨렸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게 다시 죽어버리라고 소리를 내질렀다.
빌 헤이든은 주저앉았다. 바닥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었다. 내일 새벽이 찾아오면, 시간이 되돌아오면 다시금 그 환상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하며 울었다.
14.
그리고 또다시.
짐 프리도의 가장 나쁜 점은 그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15.
‘어디로 가시는 건데요?’ ‘어디로 가든지.’ ‘안식년이라니 너무 빠르신 거 아닐까요.’ ‘오히려 늦었지.’ ‘한학기만 더 있어주세요.’ ‘귀찮게 왜이래.’ ‘계시면 안 귀찮게 할게요.’ ‘바쁘니까 끊어.’ ‘잠깐만요, 어디로 가시는데요? 그것만 알려주세요.’ 수화기 너머로 징징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빌은 어깨로 전화를 지탱하며 가방 안으로 옷가지들을 넣기 시작했다. ‘끊네.’ 미련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소파 위로 던졌다. 날씨를 살피다가 다시 가방을 싸는 것에 집중했다. 최대한 필요해 보이는 것들만 싸 넣었다.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열쇠를 돌리고 서랍을 열었다. 낡은 상자가 있었다. 상자를 열자 반질하게 잘 닦여 있는 리볼버 한 자루가 있었다. 짐이 아끼던 물건이었다. 자신의 백부에게 물려받은 것이라 했다. 대대로 남겨지는 물건이라고 말했던 것 같기도 했다. 상자에서 꺼내어 손수건으로 감싸 가방에 넣었다.
집밖으로 나서니 안개가 가득했다. 여행을 떠나 듯한 빌의 복장에 마당을 정리하던 과부가 어디를 가냐며 물었다. 빌은 그저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걷기 시작했다. 그의 까만 차를 지나쳐 도로로 걸어갔다. 여자는 빌이 걸어가는 모양새를 계속 바라보았다. 안개가 더욱 짙어져 그나마 흐릿하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집 안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모종삽을 내려놓고 장갑을 벗으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