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 죽음으로 도달하는 그 짤막한 시간까지도 그러하듯이. 모든 시간은 다른 것에 구애받지 않고 흘러갔다. 착하고 선한 이들에게도, 천벌을 받아야할 악인들에게도, 베이커가에 사는 중년의 남자에게도 시간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리고 몇 번째인지 모르는 크리스마스가 그에게 찾아왔다. 눈은 더 이상 내릴 기미가 없었고 창밖으론 맑은 하늘을 보이고 있었다. 남자는 그 가늘고 창백한 손으로 창문을 열었다. 손끝에 와 닿는 차가운 감각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춥다는 말이나, 혹은 멈칫하는 행동 또한 보이지 않았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살을 에는 바람이 훅 끼쳐 들어왔다. 남자의 -이제는 어느 정도 새치도 보이는- 까만 머리가 겨울바람에 살랑였다. 공허하다. 셜록은 전도서의 남자처럼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심장이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피의 흐름도 없이 그대로 뚫린 체로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다. 언제 적인가 무서운 영화를 보고 와서 좀비에 대해 한참이나 설명하는 오스카가 떠오른다. 오스카는 좀비가 죽어도 죽지 못하는 종족들이라고 말했다. 셜록은 자신은 좀비가 아닌가 생각했다. 아니 다를지도 모르겠다. 좀비는 죽어도 죽지 못하지만. 자신은 살아도 살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자신은 왜 살아도 살지 못하는가. 도대체 왜?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그는 기억했다 자신에게도 분명 삶이 존재했다는 것을. 비록 지루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시간의 흐름이 가치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셜록에게는 지루함을 느낄만한 감각도, 시간의 흐름이 스쳐가는 것을 안타까워할 마음도 없었다. 그는 버릇처럼 일을 했고, 버릇처럼 밥을 먹었고, 버릇처럼 잠을 잤고. 또 버릇처럼 살았다. 가치란 없었다. 모든 것이 버릇이었다.
셜록은 창가에 떨어지는 물방울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처마에 쌓여있던 눈이 녹아 후두둑 떨어졌다. 행인들이 깜짝 놀라며 위를 바라본다. 셜록은 행인들의 시선을 피하며 창문을 닫으려 했지만 자신을 부르는 커다란 음성에 차마 문을 닫지 못했다. 셜록이 힐끔 밖을 바라보았을 때 새하얀 털모자와 벙어리장갑을 낀 여자아이가 보였다. 셜록과 눈이 마주친게 신난다는 듯이 신나게 손을 흔들며 셜록을 불렀다. 조심조심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이를 바라보고 다시 힐끔 셜록을 본다. 셜록은 아이의 반응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체로 마냥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도 좋은지 아이는 팔짝팔짝 뛰면서 ‘아저씨!! 날씨가 정말 좋아요! 우리 오늘 산책가요!’하며 셜록을 불렀다. 비록 해가 뜨긴 했지만 여전히 추운 날씬데도 전혀 추위를 못 느끼겠다는 얼굴로 셜록에게 손짓했다. 아이의 흔들거리는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색감들이 셜록을 강렬하게 덮쳤다. 그 과정을 셜록은 마냥 바라보았다. 마치 어디선가 느낀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셜록이, 그제야 이상해 보였는지 아이는 수없이 아저씨 아저씨하고 남자를 불렀다. 그 커다란 목소리에 놀란 그녀의 아빠는 가게에 뛰쳐나와 ‘오스카!’하고 성난 목소리를 했다. 으아악 하고 반대편으로 뛰어가는 아이를 잡기위해 남자는 앞치마도 벗지 않은 체로 달려갔다. 저만치 뛰어가 버리는 아이를 바라보던 셜록은 의자에 걸쳐져있던 코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휘익 하고 옷을 걸쳐 입으며 성큼성큼 밖을 향했다. 현관을 열자 다시 차가운 바람이 셜록의 얼굴을 덮친다. 셜록은 목도리를 매며 도보위로 걸어 나왔다. 다시 되돌아오는 아이가 헐레벌떡 뛰면서 ‘아저씨!’하고 셜록을 불렀다. 저 뒤에서 아이를 잡기위해 죽어라 뛰는 남자도 보인다. 이 코미디 같은 상황에 셜록은 웃지도 못한 체로 자신을 향해 손을 뻗어오는 아이의 작은 손을 보았다. 그 단풍잎 같던 손이 이내에 셜록의 코트 속으로 파고들었다. 셜록은 커다란 반동에 휘청거리면서도 아이를 받아냈다. 헉헉 거리며 걸음을 멈추는 그녀의 아빠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숨이 차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에서 흘러나오는 입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아저씨 어서가요!”
아이가 셜록의 손을 이끌며 재촉했다. 셜록은 아이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 아이의 이름과 셜록을 부르는 남자가 느껴졌지만 셜록은 마냥 따뜻한 아이의 손길을 따라 걸었다. 지나가는 나무마다 전구장식으로 반짝인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다.
* * *
오스카는 얻어맞은 코가 아팠다. 쌍코피가 찌익 흐른 탓에 앙증맞은 콧구멍에 휴지를 꽂아 넣어야 했다. 오스카는 이것이 엄청나게 웃길 거란 것을 알기 때문에 빼버리고 싶었지만 피가 또 흘러내릴게 뻔했기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지금 입고 있는 분홍색 티셔츠는 얼마 전 제임스가 사준 옷이었다. 새 옷을 버릴 수는 없지.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티셔츠에 있는 아기 돼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생각을 알아챘는지 세레나 선생은 ‘오스카!’하고 소리 질렀다. 교무실에서 오스카는 야단을 맞고 있었다. 세레나는 아이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받아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오스카는 잘못했다는 말 대신, 허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마 세레나는 오스카가 아기돼지를 생각하는 것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크게 소리 지르는 선생님을 보면서 오스카는 언젠가 이 순간은 지나가며 몇 시간 뒤에 자신은 셜록의 집에서 깔깔 웃으며 뒹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한편으로 자신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교무실에서 세레나 선생과 씨름하며 이어, 돼지새끼에 바보 같기만 한 윌터와 그의 엄마에게 고문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뭐 좋다. 선생님과 씨름하면 어떻고 싸가지없는 모자(母子)에게 고문당하면 어떤가. 오스카는 어찌되었든 좋으니 이 순간이 넘어가길 바랐다. 단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면, 제임스와 라쟈가 모르게.
오스카는 두 번째로 윌터를 때려 눕혔다. 꼴사납게 넘어지면서 윌터의 바지가 책상 고리에 걸려 버렸다. 부욱 찢어진 사이로 미키마우스 팬티가 보였다. 아이들이 윌터의 팬티를 보면서 깔깔 웃기 시작했다. 오스카도 그 순간이 너무 웃겼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비록 윌터가 ‘오스카네 아빠는 호모들이래요~ 더러운 호모들이래요~’하고 놀렸지마는, 비록 그러하다 하더라도 타인을 괴롭게 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오스카는 넘어진 체로 일어나지 않은 윌터에게 멈칫멈칫하며 손을 내밀려고 했다. 교실은 웃음으로 떠내려가는 듯 했지만 오스카에게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바닥을 짚고 있는 윌터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순간 오스카는 윌터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윌터가 울면 안 되는데, 그러면 안되는데. 오스카는 머뭇거리던 손을 펼쳐서 윌터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윌터는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버렸다. 그리고 오스카가 그의 얼굴을 확인하기도전에 오동통하지만 무지막지한 주먹을 휘둘렀다.
오스카의 코를 후려친 주먹이 떨어져나갔다. 그렇게 시끄럽던 교실 사이로 파도가 덮친 것마냥, 주위는 고요해졌다. 윌터는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씩씩 거렸다. 오스카는 얻어맞은 코가 얼얼했다. 코가 빵 터져 버릴것 같다. 눈물이 고였지만 울지 않기 위해서 눈을 감지 않았다. 눈물을 보이면 지는 거다. 오스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끝까지 눈물을 참아냈다. 그런데 뜨끈한 무언가가 턱으로 뚝뚝 흐르는 것이다. 이상하다. 눈물을 참아내고 있는데 왜? 오스카가 궁금해 하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 ‘으악!! 쌍코피다!!’하고 소리 질렀다. 오스카를 바라보고 있는 윌터의 표정이 이상했다. 아까전만해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씩씩 거렸는데, 지금은 당황한 기색이 가득하다. 오스카는 손을 들어 코밑을 쓰윽 닦았다. 따뜻하고 진득한 액체가 손에 묻어나왔다. 그리고 손을 눈앞으로 가져갔다. 손등이 새빨갛다. 얼마 전에 그렸던 산타클로스의 모자보다 새빨갛다. 오스카는 피를 보자마자 참아왔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오스카와 친한 제인이 선생님의 책상에 있던 휴지를 뜯어 부랴부랴 달려왔다. 오스카는 제인이 건네주는 휴지로 코피를 닦으면서 윌터를 노려보았다. 윌터는 오스카의 매서운 눈길에 움찔했다. 바지를 겨우 움켜지고 있는 손끝의 떨림마저 확연히 보였다. 제인은 휴지가 더 필요하다며 다시 부랴부랴 달려갔다. 오스카는 피로 가득 물든 휴지를 붙잡고 있었다.
누군가 ‘오스카에게 사과해!’하고 외쳤다. 그 목소리에 부응하듯 ‘어서 사과해라! 어서!!’ ‘미키마우스 팬티는 어서 오스카에게 사과해!!’ ‘누가 선생님 좀 불러와!’ ‘윌터 사과해!’ 여러 목소리가 교실을 울려 퍼졌다. 아까 전에는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곳이 이번에는 시위대마냥 성난 목소리로 윌터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윌터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바라보다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는 오스카를 보았다. 그리고 떨리던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호모새끼 딸에게는 사과 안 해!! 안 할거야!!
그리고 오스카는 윌터에게 달려들었다. 주변 아이들이 꺄악꺄악 소리지르는 것도 모르고서 닥치는 데로 주먹을 휘둘렀다. 오스카의 성난 주먹이 웰터의 코를 때리고 뺨을 때리고 턱을 때렸다. 윌터는 갑작스럽게 달려든 오스카를 감당하지도 못하고 얻어맞기만 했다. 이내에 윌터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심각성을 깨달은 아이들 중 몇 명은 교무실로 달려갔고 남자아이 몇 명은 오스카를 떼어놓기 위해 힘을 썼다. 그러나 오스카는 고목나무의 매미마냥 윌터에게 달라붙어 끝까지 주먹을 날렸다. 윌터의 얼굴이 프랑켄슈타인처럼 부풀어 올랐을 때, 교무실에서 달려온 세레나 선생이 오스카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녀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오스카는 폭력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남선생들의 도움을 받아 오스카를 떼어놓을 수 있었다. 이미 윌터는 만신창이였다.
“오스카, 네 부모님께 연락드린 것 맞니?”
세레나 선생이 냉정하게 말했다. 오스카를 교실로 끌고 온 세레나는 명부를 뒤적이며 오스카부모님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날카롭게 핸드폰을 꺼내들고 전화를 하려던 순간, 잠시 멈칫하고 멈춰 섰다. 그리고 오스카에게 핸드폰을 내밀면서 말했다. ‘네가 전화하렴. 분명하게. 선생님의 앞에서. 거짓말 없이. 학교로 오시라고 해.’ 그녀는 이것이 오스카에게 주는 하나의 벌이라고 생각했다. 오스카는 망설이며 핸드폰을 들었다. 지금쯤 제임스는 병원에서 할아버지들을 돌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저번에 말해주던 피터 할아버지와 함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쟈는 가게에 있을 것이다. 손님이 많은 시간이다. 정신이 없이 뛰어다니겠지. 오스카는 머릿속의 아빠들을 생각했다. 환하게 웃으며 ‘내 딸!’하고 안아주는 제임스와, 잔소리가 심하지만 누구보다 오스카를 사랑해주는 라쟈가 떠올랐다. 그녀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빠들 중 한사람도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했다. 저번에는 라쟈가 학교로 찾아와 윌터의 엄마에게 허리를 굽히고 미안하다고 말했었다. 오스카는 그때 어른들이 말하는 죽고 싶다는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스카가 계속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세레나는 ‘어서!’하고 소리 질렀다. -이제 갓 들어온 신입교사는 정말 신경질적이었다.- 오스카는 꾸욱꾸욱하고 핸드폰번호를 눌렀다. 뚜르르-하는 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딸깍하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오스카는 꾸욱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오스카에요. 저 지금 학교 교무실에 있는데, 선생님이 학교로 오셨으면 한다고 하셨어요. 꼭 오세요. 꼭이요.’
툭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세레나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세레나는 핸드폰을 돌려받으면서 ‘오신다니?’하고 물었다.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에 오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벌써 1시간 전이었다. 아이들은 전부 하교했다. 제인은 오스카가 걱정되는지 교무실을 기웃거렸지만 이내 세레나 선생에게 걸려 돌려보내지고 말았다. 오스카를 바라보는 제인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오스카는 친절한 친구에게 감동하며 선생님 몰래 웃음을 보이고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고 제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을 때 오스카는 다시 눈물을 꾹 참아야했다. 윌터는 병원으로 갔다. 아까 세레나가 통화하는 것으로 보아 윌터의 엄마가 병원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전화를 끊고 오스카를 보았다. ‘윌터가 빠졌다는구나. 눈도 부었고. 코에도 금이갔데. 오스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사람을 때릴 수 있니? 정말 이 선생님은 너무 놀랍고 화가나는구나!’ 그녀는 분을 삼키지 못했다.
오스카는 이 모든 게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모든 시작은 윌터로 시작되었다. 윌터가 오스카의 부모님을 놀렸고 오스카는 그에 합당한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잘못은 오스카가 뒤집어쓰고 있었다. 오스카는 세레나에게 몇 번이고 상황을 설명하면서 ‘윌터가 저희 부모님을 놀렸어요. 저희 부모님 보고 더럽다고 했어요.’하고 말했다. 세레나는 그 사실에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오스카를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지만 결국은 오스카가 윌터를 때려서는 안됐고 너의 잘못이 너무 크다며 오스카를 탓했다. 이해하는 척 말하는 것이 더 나빴다. 오스카는 몇 번씩이나 반복되는 대화에 기가 질리고 화가 났다. 그리고 이내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세레나의 한풀이를 들어야했다. 지나가는 교사들이 오스카를 보며 혀를 차기도 했고 빨갛게 부어있는 -다행이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 것은 아니었다.- 코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중 오스카를 특히 예뻐하는 옆 반 선생님-그는 윌터가 고집스럽고 남을 괴롭히기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언제나 그 타깃이 오스카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은 오스카에게 몇 번이나 말을 걸고 사탕을 쥐어주고 싶어 했지만 눈치를 주는 세레나 선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했다.
몇 분 전 윌터와 학교로 오고 있다며 윌터의 엄마가 연락을 했다. 오스카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고음에 솜털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오스카와 세레나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오스카는 작은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로 바닥만 보고 있었고. 세레나는 업무처리를 했다. 오스카는 너머로 컴퓨터자판을 두드리는 선생님을 보았다가 다시 바닥을 보고 창밖을 보았다가 다시 바닥을 보았다. 세레나는 다시 연락해보라며 오스카에게 핸드폰을 쥐어줬다. 오스카가 다시 연락하자 신호음이 끊이지 않고 길게 이어졌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오스카는 심장이 쿵 떨어졌다. 그리고 어깨를 움츠리며 ‘안 받으세요’하고 말했다. 세레나는 오시는 모양이라며 다시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했다. 오스카는 자리에 앉으며 기도 손을 했다. 앙증맞은 손들이 서롤 붙들고 있었다. 그때 교실 문이 발칵 열렸다.
“아, 윌터 어머니 오셨어요.”
희망으로 반짝였던 오스카의 다시금 쿵 떨어졌다. 째삣한 안경을 쓰고 있는 아줌마가 휘익 교무실을 훑어보다 구석에 앉아있는 오스카를 발견했다. 아줌마의 옆에는 윌터라고 할 수 없는 윌터가 서있었다.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서 오스카에게 다가왔다. 오스카가 비척이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스카.’하고 불렀다. 평소의 오스카라면 오랜만이에요~하고 농담이라도 던졌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스카는 겁먹어 있었다. 이 시간이 그냥 온전히 흘러가버리길 바라고 바랐지만, 오스카는 겨우 7살이었다.
“세상에. 넌 윌터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멀쩡하구나! 지금 우리 윌터 얼굴이 보이니!? 의사선생님이 윌터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더구나! 이 아줌마가 저번에 뭐라고 했니?! 한번만 더 윌터를 괴롭히면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니, 안했니?! 넌 너그럽게 넘어간 아줌마를 이렇게 무시하는 거야!!”
교무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에 교사들이 경직하며 그녀와 오스카를 바라보았다. 뒤에서 서있는 세레나는 윌터의 모친에게 진정하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전혀 진정하지 못하고 오스카를 향해 끊임없이 분노를 뱉어냈다. 그녀의 곁에 있던 윌터는 퉁퉁 부운 얼굴 때문에 표정을 살필 수 없었지만, 그다지 편안한 기분은 아닌 것 같았다. 윌터가 화내는 엄마의 소매를 살짝살짝 잡으며 ‘엄마. 엄마.’하고 불렀다. 윌터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보다 못한 옆자리의 교사가 -그 옆 반 교사였다- ‘어머니, 잠시 만요.’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오스카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이게 온전히 오스카의 잘못이던 아니던 모든 것을 떠나, 어린 아이를 이렇게 몰아가선 안 되는 것이다. 오스카가 울먹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세레나 선생의 곱지 못한 시선을 받으며 사건의 불합리성에 대하여 설명하려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윌터의 모친이 벌컥 열어놓은 탓에 누군가 문을 열 필요조차 없었다. 모두가 침묵하며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그 눈길에 반응조차 하지 않은 체로 사뿐히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세레나가 놀라며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순간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이목이 집중된 체로 세레나 선생은 남자에게 물었다.
“누구....신지...?”
남자는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성격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여자를 힐끔 내려 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오스카를 보았다. 그가 아주 느릿하게 가죽장갑을 벗었다. 까만색 가죽장갑이 벗겨지자 그 안으로 하얗고 창백한 손등이 드러났다.
“오스카 보호자입니다."
세레나는 오스카의 부모를 기억하고 있었다. 한 남자는 인도계열의 남자로 작고 아담하지만 웃는 얼굴이 제법 싹싹했고, 한 남자는 게이인게 안타깝다 싶을 정로도 미남이었다. 어쨌거나 지금 앞에 있는 남자는 그녀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남자였다. 세레나는 잠시 말을 망설였다. 오스카를 바라보니 아이는 남자를 알고 있는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남자를 마냥 바라보고 있었고, 남자는 벗은 장갑을 한손으로 옮기더니 -그것은 아주 우아해보였다.- 세레나를 내려다보면서 ‘무슨 일입니까?’하고 물었다. 세레나는 남자에게 상황을 설명하려다가 잠시 잠깐 멈췄다. 그리고 아까전의 대답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구체적인 물음을 남자에게 던졌다.
“그러니까, 아버님은 아닌 것 같고...”
“오스카의 삼촌(uncle:아저씨, 삼촌)입니다. 제가 물었던 건 그게 아니었는데 끝까지 제 할말 만 하시는군요.”
‘다시 한 번 물어보지요. 무슨 일입니까.’ 남자의 말에 다들 입을 떡벌리고 바라봤다. 윌터와 그의 모친도 남자의 등장부터 한마디 한마디 던지는 순간까지 놓치지 않고 응시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혹은 당황스럽게 바라본 것은 역시나 오스카였다. 오스카는 정말 셜록이 이곳에 올지 몰랐다. 나름대로 수를 써서 라쟈의 가게 대신 셜록에게 전화한 것이었는데, 맙소사. 정말 그가 왔다. 셜록에게 전화한 것도 전화한 것이었지만 만약 셜록이 오게 되더라도 그 뒤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스카는 당황했다. 셜록은 세레나에게 ‘난 저애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이오.’ 하고 말한 것이었지만 세레나는 완벽하게 셜록이 오스카의 친인척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사실 그게 아니라면 오스카는 세레나에게 눈총세례를 받아야했을 것이다- 셜록의 냉정한 말에 세레나는 굳은 표정을 하더니 우선 앉아서 이야기하자며 의자를 내밀었다. 그러나 셜록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흔들면서 ‘난 시간 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리고 오스카를 보았다. 정확히는 부어있는 오스카의 코와, 앙증맞은 콧구멍을 막고 있는 휴지조각들을 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거쳐서 프랑켄슈타인이 되어있는 윌터와 날카로워 보이는 그의 모친을 바라보았다. 딱히 탐정이 아니더라도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우리 아들을 보고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
당황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가 셜록의 시간 끄는 것은 질색. 이라는 말에 윌터의 엄마가 회복했다. 그리고 셜록을 향해서 따지기 시작했다. 셜록의 얼굴을 보다가 윌터의 얼굴을 보았다. -윌터는 셜록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셜록의 눈길은 단지 본다고 하기보다는 분석한다는 느낌이어서 부인은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고래처럼 끼인 세레나는 보호자들(?)이 싸우지 않기 위해 진정하시라고 말했지만 흥분한 그녀는 도저히 말을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오스카에게 앙칼진 아이라는 등, 되먹지 못했다는 등, 어떻게 자기 아이를 이렇게 해놓을 수 있냐는 등, 진부하고 재미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속히 셜록이 싫어하는 부류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을 툭 끊으면서 셜록이 오스카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었는지 설명해 보거라.’ 자신의 말을 듣지도 않은 체로 끊어버리는 셜록에게 여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하!’ 하고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셜록은 그런 여자가 어이없다는 소리를 지르든, 돼지소리를 내던 간에 관심이 없었다. 오스카는 셜록의 말에 망설였다. 그런 오스카를 ‘말해봐, 오스카.’하고 다정하게 응원한 것은 옆반의 선생님이었다. 오스카는 오물거리던 입을 때서, 아까 세레나에게 몇 번이나 말했던 상황을 조심조심 말하기 시작했다.
“윌터가 나를 놀렸어요. 그래서 제가 윌터를 밀쳤는데, 그때 윌터의 바지가 찢어져서 팬티가 보였어요. -윌터의 귓가가 새빨개졌다- 나는 윌터를 일으켜주려고 했는데, 윌터가 너무 화가 난 모양인지 제 코를 때렸어요. 그리고... 이렇게 코피가 난거고요. 저는 참으려고 했어요. 정말이에요! 저는 코피가 났고, 윌터는 팬티가 보였으니까 쌤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더 이상 싸우고 싶진 않았어요. 물론 화는 났지만.... 그런데 윌터가 다시 저를 놀렸어요. 그리고 저는 너무 화가 나서. ... 그래서 싸웠어요.”
“윌터가 뭐라고 놀렸지?”
셜록이 오스카의 말이 끝나자마자 물었다. 오스카는 일부러 윌터가 자신을 놀린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우선 오스카는 비록 자신이 저지른 일이지만, 엉망진창이 되어있는 윌터가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했고. 또 그 상황을 말한다면 윌터가 정말 나쁜 애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스카는 스스로를 착한 아이라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지만, 때때로 아빠에게 하는 일이나, 학교에서 하는 자신의 일들이 그다지 착해보이지는 않았다. 오스카는 그것을 고민하다가 제임스에게 말했다. 자신은 별로 착한 아이가 아닌 것 같다고. 그러자 제임스는 오스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우리 딸, 착한 사람으로 사는 것보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멋진 거란다.’ 오스카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노력’의 뜻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려고 노력했다. ...물론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오스카가 대답을 망설이자 셜록이 ‘오스카’하고 불렀다. 세레나는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아니 세레나뿐 아니었다. 세라나, 윌터, 그리고 오스카와 윌터를 알고 있는 모든 교사들이 알고 있었다. 여기 있지는 않지만 오스카의 반아이들 또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세레나는 그런 오스카를 보면서 이 상황을 끌 수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인지 스스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막아서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월터였다.
“데가, 오쯔까항테 오쯔까의 아빠드른 호모드니라고 논렸서요.”
입안이 부어버린 탓에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하게 의미전달을 하며 윌터가 말했다. 오스카는 깜짝 놀란 눈으로 윌터를 바라보았다. 윌터가 사실을 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윌터는 겨우 셜록을 바라보았고 셜록은 새파란 눈동자로 아이를 바라보다 그의 모친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이를 잡고 있는 손이 부들 떨리는 게 보였다. 그것은 당황스러움이 아니었다. 여자는 분명히 아이가 오스카에게 그런 말들과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행동으로 보아, 분명 아이는 제 엄마에게 자신이 오스카를 놀렸다고 말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건너 뛴 체로 엉망진창이 되어있는 아들의 모습에만 집중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러하지. 셜록은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그건 놀림거리가 아니잖아요? 사실이지. 비록 우리 아들이 오스카를 놀린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사실을 근거로 말했으니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 않나요? 그렇다고 이렇게 애를 만들어 놓다니, 그거 하나로 지금 모든 것을 덮을 생각인건가요?”
윌터의 엄마가 좀 더 견고하게 말을 꺼냈다. 오스카가 입을 악물었고 윌터는 눈물이 고인체로 제 엄마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세레나와 셜록을 바라보았다. 아까 전 감정적으로만 말을 꺼내던 여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옮음을 인정받고 싶다는 듯이 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 셜록은 여자의 눈치를 알아챘다. 어쨌든 상대가 싹싹 빌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저건 일종의 콤플렉스였다. 자신의 잘못은 스쳐가는 듯이 인정하는 척 하면서 결국 ‘어쨌든 잘못은 너잖아.’하고 말하는 타입의 인간들. 장담컨대 저 여자의 주변에는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셜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스카의 삼촌이 윌터의 엄마에게 기가 눌렸다고 생각했다. 오스카도 마찬가지였다. 셜록은 정말 아무런 잘못도 없이 자신을 도와주러 온 것인데, 여기 와서 고생하고 있었다. 오스카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저씨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그러나 삼키고 있던 눈물이 다시 고이기 시작했다. 자신은 정말 제임스와 라쟈가 이곳에 와서 고개 숙이는게 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부인, 스카프가 예쁘군요.”
셜록이 말했다. 뜬금없는 소리에 다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가 싶어 셜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말한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계속해서 그녀의 스카프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짙은 자주색을 바탕으로 옅은 회색과 흰색의 패턴이라. 디자인이 정말 훌륭하군요. 메이커가 또 메이커인 만큼 비싼 제품이기도 하고. 그런데 부인이 하기에는 너무 젊은 디자인이군요.”
“지금 당신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그녀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높였다. 고조되는 긴장감에 세레나가 안절부절 못했다.
“부인이 입고 있는 투피스의 정장이나, 가방이나 팔찌, 귀걸이 전부 그렇게 값나가는 제품들은 아닙니다. 아, 끼고 있는 결혼반지는 제외하고. 그건 좋아 보이는군. 하지만 차려입은 것들에 비해서 그에 비해서 스카프 하나는 눈에 띌 정도로 비싼 제품이네요. 그건 결국 부인께서 큰맘을 먹고 구매했다거나 혹은 선물을 받았다는 거죠. 하지만 제가 보기로 부인이 사신 건 아닌 것 같고. 결국 선물을 받았다는 건데, 그 정도 비싼 선물을 해줄 사람이라면 가족일 확률이 높죠. 하지만 남편께서는 그다지 부인의 취향을 모르셨던 것 같네요. 부인의 얼굴색을 살리기는커녕 푸르죽죽하게 만드는 자주색이라. 게다가 부인이 입고 있는 옷 취향과는 전혀 매치가 안 되어 보이기도하고.”
여자가 셜록에게 따지기 위해 입을 벌렸지만 그것을 막기라도 하듯이 잠시 텀을 가졌던 셜록이 다시 혀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 스카프의 메이커는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메이커죠. 특히 20-30대 여자들한테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고 있어요. 중년의 여자들이 선호하는 타입은 아니죠. 그런데 왜 남편께서는 당신에게 이런 선물을 주었을까요. 부인께서 입고 다니는 옷과 매치되는 스타일도 아니고. 단지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다 똑같아서? 아니면, 원래 주려던 사람이 따로 있었다거나?”
여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려고 했다면, 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값비싼 선물을 주려고 했을까요. 그것도 이런 것을 좋아 할거라고 생각한 목표의 여자에게. 저는 잘 모르겠는데, 부인께서는 아십니까?”
“당신 대체 뭐야, 이런 방식으로 나를 엿 먹이겠다 이거야?!”
셜록은 이 여자가 이미 남편의 외도를 알고이었노라 생각했다. 아니 알고 있다는 표현보다는 추측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았다. 여자는 계속해서 남편을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듯이 남편을 의심하는 자신을 타이르면서, 그가 선물해준 스카프를 골랐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믿고 있어.’하는 그 신뢰의 뜻으로. 이것 봐라. 그녀는 문제 자체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고 있지 않은가. 셜록은 은연중에 살짝 미소까지 띄우며 말했다.
“이건 제가 부인을 엿 먹이려고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진정한 사실이지. 비록 제가 부인을 화가 나게 하는 말을 했을 지라도, 사실을 근거로 말했으니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요. 지금 그거 하나로 저에게 화풀이를 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여자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했다. 여자가 했던 말을 그대로 셜록이 따라했다. 비록 내용만 달랐지만 여자가 부렸던 억지와 완전하게 동일 되는 것이었다. 여자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있자 셜록은 그 행동이 지루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면서 세레나를 보았다.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셜록은 세레나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오스카의 이름을 부르며 손짓했다. 오스카가 곁에 있던 외투와 가방을 들고서 셜록에게 뛰어와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조용한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오스카는 셜록을 따라 학교의 복도를 터벅터벅 걸었다. 복도는 차갑고 텅 비어 있었다. 게시판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는 메말라 있는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도로가는 차량 몇 대가 보였다. 오스카는 갑자기 멈춰 섰다. 셜록은 자신의 손을 스륵 놓으며 멈춰선 오스카를 바라보았다. 오스카는 오도카니 공간에서 멈춰서있었다. 전혀 공간에 흡수되지 않은 체로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셜록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스카를 보았다. 오스카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유리창을 때리는 바람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뿌연 하늘로 곧 눈이 내릴 것 같았다. 오스카가 침묵을 깨듯이 입을 열었다.
“더럽지 않아.”
셜록은 어깨를 펴며 오스카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아빠들은 더럽지 않아.”
오스카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7살짜리 여자아이의 그림자가 왜 저렇게 기다란 것일까. 셜록은 그녀의 그림자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 아빠들이란 말이야...우리...오스카...오스카 아..아빠들이란 말이야.”
오스카에게 사랑해준다고 말해주는 우리 아빠들이란 말이야. 내가 못된 짓을 해도 나를 안아주고 나를 용서해주는 아빠들이란 말이야. 더러운 호모들이란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되는 오스카의 좋은 아빠들이란 말이야. 사랑하는 오스카의 아빠들이란 말이야. 오스카가 정말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야.
오스카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바람 스미는 소리만 가득하던 복도로 오스카의 울음소리가 섞여 들였다. 어찌나 서럽고 고통스러운지 듣고 있는 셜록의 귀가 아릿했다. 고개를 숙이고만 있던 오스카가 처참한 얼굴을 들고 눈물을 닦으며 울기 시작했다. 꾹꾹 참아왔던 눈물들이 터져 나와 도무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아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지 우리는 한 가족일 뿐인데, 우리는 다만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왜 사람들은 우리에게 존재해서는 안 되는 가족이라고 말하나요. 우리는 정말 그냥,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처럼 행복해지고 싶을 뿐인데, 왜 우리 가족은 없어져야한다고 말하나요? 여태동안 작은 가슴에서 안고 있던 고통과 슬픔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스카의 울음소리는 더더욱 커져갔다.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울려 퍼지는 오스카의 목소리에 셜록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오스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작은 몸을 안아 들었다. 오스카가 손을 뻗어 셜록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었다. 빨갛게 상기된 뺨과 부어있는 코가 처량했다. 셜록의 어깨가 오스카의 눈물로 톡톡 젖기 시작했다. 오스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셜록은 안아든 오스카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자, 오스카를 기다리던 제인이 셜록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울고 있는 오스카를 보고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오스카는 제인을 발견했지만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오스카의 울음의 이유도 모른 체로 제인은 자신의 친구가 슬퍼한다는 사실에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셜록은 영문도 모르고 우는 아이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셜록이 걸음을 옮기자 제인이 셜록의 뒤를 따르며 엉엉 울었다. 우스운 꼴임에도 불구하고도 셜록은 도저히 웃을 기운이 나지 않았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 * *
셜록은 오스카에게 이번 일을 비밀로 해주겠노라고 말했지만 오스카는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록 피하기 위해서 셜록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이대로 건너가 버린다면 아빠들을 속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셜록은 그렇게 말하는 오스카를 보면서 그러라고 했다. 딱히 막을 생각은 없었다. 되레 오스카의 말이 옳지 않은가. 오스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셜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수줍게 말하기까지 했다. 셜록은 그걸 이제 알았냐는 표정으로 신문을 들었다. 오스카가 빙긋 웃으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다다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셜록은 따뜻한 차를 음미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이었다. 은근하게 보이던 추리들과, 캐롤은 이제 숨기지 않고 사람들의 시야로 달려들었다. 밤이 되면 런던은 아름다운 빛으로 뒤덮였다. 산타복장을 한 사람들이 시내를 걸어 다니며 홍보를 했고 구세군이 종을 울렸다. 광장의 피카델리의 커다란 트리를 올려다보며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다며 오스카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었다. 하지만 셜록은 크리스마스는 실제로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난 날도 아니며, 단지 물건을 팔기 위한 기념일에 불과하다고 오스카에게 말했다. 오스카는 그 말을 들으며 꼭 그렇게 말해야겠냐며 셜록을 타박했다. 그렇게 오스카가 셜록을 타박할 때면, 셜록은 지그시 오스카를 내려다보았다. 크리스마스가 낀, 일주일의 방학을 맞이한 오스카는 방학동안 거의 셜록의 집에 살았다. 셜록이 가끔 사건을 나갈 때 빼고는 셜록의 집에서 뒹굴고 먹고 그림을 그리고 TV를 보았다. 이제 이 집의 주인이 셜록인지 오스카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번은 셜록을 병원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마이크로프트가 베이커가를 방문했었다. 그때 문을 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오스카였다. 오스카는 마이크로프트를 보고 ‘헉!’하고 다시 문을 쾅 닫아버렸다. 마이크로프트는 순간 자신이 잘못 찾아온 것인가 싶어 다시 계단을 내려가 주소를 확인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이크로프트는 이내 아이가 셜록의 ‘오스카’임을 생각하고 다시 문을 두들겼다. 그가 아주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문 열어주겠니?’하고 말하자 오스카는 빼꼼하게 문을 열더니 웃고 있는 마이크로프트를 바라보았다. 녹색 눈동자와 발그스름한 뺨이 퍽이나 귀엽다고 생각하며 그는 ‘네가 오스카구나. 말 많이 들었단다.’하고 말했다. 그런 마이크로프트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오스카가 삐딱하게 말을 뱉었다.
‘아저씨가 마이크로프트군요. 저도 셜록 아저씨한테 많이 들었어요. 아저씨가 아주 셜록 아저씨를 귀찮게 굴고 짜증나게 굴고 화가 나게 한다고요. 그래서 아저씨가 만약 당신이 오면 있는 힘껏 문을 닫고 문전 박대를 하라고 했어요. 잡상인은 안 받아! 하면서...아, 그걸 빼먹었네.’
‘......셜록!’
‘오스카, 문 열어줘.’
셜록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야 오스카가 문을 열어 주었다. 문 너머에서는 셜록이 책을 읽고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문을 열어주는 오스카를 향해 상냥하게 웃음을 지어줬지만 여전히 오스카는 그를 경계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에게 어서 이 어린 아가씨에게 오해를 풀어주라고 말했지만 셜록은 콧방귀를 낄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코트를 벗으며 마이크로프트는 혀를 찼다. 주입식 교육의 무서움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군. 마이크로프트는 코트를 벗지도 않은 체로 셜록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셜록은 형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그제야 고개를 들면서 방문이유를 물었다. 냉정하기 짝이 없는 동생의 말에 마이크로프트는 잔소리라도 할까 싶었지만 자신에게도 그럴 여유는 없었기에 셜록의 말대로 방문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동생아, 크리스마스다.’
‘오늘은 크리스마스가 아니야. 크리스마스는 내일이지. 아니 더욱 정확히 하자면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고, 그 다음이 크리스마스야.’
‘너한테 그걸 말하려고 했던건 아니다.’
마이크로프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명절은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는 카피문구같은 이야기를 했다. 셜록이 그 소리에 짜증스러운 얼굴을 한 것은 두말 할것도 없었다. 셜록은 마이크로프트의 소리가 진부하기 짝이 없다며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덧붙여 자신은 올해로 100살을 넘긴 작은할머니에게 재롱을 떨지 않을 것이며, 억지로 저녁을 먹이는 그 분위기에 가담하지 않겠노라고 말했다. 셜록의 말은 증오까지 서려있는 것이라 마이크로프트는 그렇게 괴로웠을까 의문이 들었으나, 사실 셜록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셜록은 늘 성탄절 가족행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런 일에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크리스마스를 노리고 일을 벌이는 범죄자들을 쫒는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마이크로프트는 주변에 자신의 품에서 작은 수첩과 펜을 꺼내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남자의 유려한 필기체를 보는 셜록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꼭 오거라.’
그렇게 말하고 마이크로프트는 방문을 열어 -여전히 우아하게- 퇴장했다. 셜록은 종이를 구겨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어린아이의 앞에서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어 그냥 못 본체하고 접었던 책을 들었다. 오스카는 눈을 반짝이며 종잇조각을 들여다보다 셜록을 보았다. 그리고 ‘가실거에요?’하고 물었다. 셜록은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체로 ‘아니.’하고 대답했다. 오스카가 완벽하게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오스카는 셜록의 팔에 매달렸다. ‘그렇다면, 우리 집에 오시는 건 어때요?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늘 맛있는 음식을 먹어요. 선물도 주고요. 전 저번 크리스마스 때 아빠들에게 커플 양말을 선물했어요. 라쟈는 보라색, 제임스는 파란색. 두 사람 다 좋아했었는데! 아저씨도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 먹어요. 라쟈가 분명 좋아할 거에요.’ 오스카가 들떠서 말했다. 셜록은 흥분한 체로 자신에게 말하는 아이를 가만 바라보다가 ‘아니.’하고 대답했다. 전과 같은 대답이었지만 이번 대답은 오스카가 예상하지 못하던 내용이었다. 오스카가 그세 볼을 부풀리면서 ‘왜요!?’하고 물었다.
셜록은 오스카의 간단한 물음에 다시 문자로 시선을 돌리며 ‘난 요란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오스카는 그것에 셜록의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다. 셜록은 요란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특히 범죄자들이 판을 치고 다니는 런던의 요란스러움을 좋아한다. 가끔씩 셜록이 말해주는 범죄담을 들으면서 오스카가 생각한 것이 바로 그거였다. 참 요란스럽기도 하네. 그러나 오스카는 셜록의 말에 꼬투리를 잡지 못했다. 라쟈는 오스카를 붙잡고 늘 아저씨를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셜록의 집을 들락날락 거리는 그 순간부터 그를 귀찮게 하고 있다는 것을 라쟈는 알고 있었다.- 아저씨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안 된다. 아저씨의 말에 꼬투리를 잡지 마라. 라쟈가 저녁에 설거지를 하며 말했던 것들을 기억하며 오스카는 겨우 참아냈다. 가족모임을 거절한 것을 보면, 그는 정말 파티를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스카는 크리스마스를 셜록하고 함께 보내고 싶었다.
첫 번째로 아저씨와 함께 있으면 즐거웠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크리스마스에 셜록이 혼자 있는 것이 싫었다. 그가 괜찮다고 할지라도 보고 있는 사람이 더 싸늘히 외로웠다. 오스카는 머리를 굴리며 생각하다 ‘아!’하고 손바닥을 쳤다.
‘그러면 제가 이브날 밤에 놀러 와도 되요? 저녁에요! 그날 저녁 여기서 자는거에요. 수다도 떨고 간식도 먹으면서요, 그걸 뭐라고 하더라? 아! 파자마 파티처럼!’
‘....여기서 베개싸움을 하려는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 더불어 간식 먹기와 수다 떨기도.’
‘뭐, 딱히 그런 것들이 없어도 되요. 그러면 그냥 TV를 보는 것도 좋아요. 크리스마스에는 재미있는 영화들이 많이 하니까요.’
‘..............’
‘그래도 돼요? 돼요? 돼요?’
‘상관없다.’
셜록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오스카가 야호! 하고 방방 뛰었다. 그리고 라쟈에게 허락을 받겠다며 다다다 뛰어나갔다. 정신없이 뛰어나가는 오스카의 뒷모습을 보면서 셜록은 바람 빠진 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비록 바람 빠진 웃음이긴 했지만, 셜록은 그 웃음이 얼마 만에 짓는 미소인지 모르고 있었다.
오스카는 기어코 허락을 받아냈다. 이후 그렇게 다다다 뛰어가더니 한참을 오지 않아 셜록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그 순간, 라쟈가 오스카의 손을 끌고 셜록을 찾았다. 익숙한 데자부로군. 셜록이 생각했다. 라쟈는 Mr.셜록이 정말 그런 허락을 내리신 것이 맞냐며 확인을 했다. 그리고 셜록의 말을 듣기도 전에 그것은 너무 Mr.셜록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절부절못하는 라쟈에게 셜록은 ‘어차피 끼칠 폐는 다 끼쳤습니다.’라고 말해 남자를 아주 당혹스럽게 했다. 그리고 ‘오스카가 이곳에서 자더라도 상관없습니다.’하고 말했다. 라쟈의 표정이 조금 미묘하게 변하자. 셜록은 말을 덧붙였다. ‘제가 소아성애자는 아닌 것을 증명해야합니까.’ 그 말에 라쟈가 깜짝 놀라며 ‘아니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하고 말했다. 여태동안 셜록에 오스카를 대해온 모습들을 보더라도 그가 그런 성적취향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그가 롤리타의 험버트와 같이 차갑고도 우울하게 생긴 미남이라고 할지라도.......이런, 라쟈는 생각이 너무 엇나갔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의 목덜미를 문질렀다.
저번의 상황과 비슷했다. 셜록이 괜찮다고 하는데 또 절대 안 됩니다! 하고 말한다면. 셜록의 말과 같이 그를 소아성애자로 생각한다고 행하는 바가 되지 않는가. 결국 라쟈는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날 저녁에 오스카의 손에 그가 꽤 좋아하는 것 같은 찻잎세트와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붙들어놔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한 오스카는 팔짝팔짝 뛰면서 쾌재의 노래를 불렀다.
“아저씨, 니콜라스 홀트가 잘생긴 것 같아요, 아니면 브래들리 제임스가 잘생긴 것 같아요?”
“난 둘 다 몰라.”
“지금 가장 잘나가는 미남들을 모른다고 하시는 거예요!? 아저씨가 알고 있는 연예인은 누구에요. 대체!”
“......제레미 브랫?”
“맙소사! 대체 그건 누구야!”
TV를 바라보던 오스카가 넌지시 셜록에게 물었다. 보고 있는 대체 얼마나 우려먹을 것인지 가늠할 수 없는 <나홀로집에 2>였다. 보면서 어째서 다른 배우들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셜록은 어쨌든 오스카의 말을 다 들어주고 있었다. 오스카는 니콜라스 홀트는 그 깊은 눈동자와 왠지 모르게 나쁜 남자의 분위기가 풍겨서 좋다고 했고, 브래들리 제임스는 딱 봐도 왕자님 같은데 실제로는 축구선수인지 연기자인지 분간할 수 없이 축구를 좋아하는 면이 소년 같아서 좋다고 했다. 브래들리 제임스과 니콜라스 홀트고간에 얼굴자체를 모르니 셜록은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사람들이 시내로 몰린 모양인지, 베이커 거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일기예보에 맞춰 내리는 눈이 힘을 실어줬을 것이 뻔했다. 오스카는 저녁을 먹자마자 바로 셜록의 집으로 튀어왔다. 파자마위에 코트만 걸치고 헐레벌떡 뛰어온 아이에게 문을 열어주며 셜록은 따뜻한 우유를 준비해야만했다. 그러나 그런 셜록을 붙잡으며 오스카는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무언가를 내밀었다. 엉성하게 뭉뚱그려진 찰흙 덩어리와 옆서 한 장이었다. 셜록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분명 이 찰흙덩어리는 오스카가 좋아하던 -또 셜록보고 닮았다고 하던- 꼬마 양의 모습과 비슷했다. 특히 커다란 콧구멍이 그러했다. 대체 이걸 어디다 쓰라고 주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셜록은 답지 않게 고맙다고 말하며 선물을 받았다. 비록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으나 오스카는 셜록의 인사에 방긋 웃었다. 그리고 엽서 한 장은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아무 관련 없는 그림이었다.
‘나이팅게일.’ 셜록이 말했다. 새를 알아본 셜록을 보고 기뻐하며 오스카는 ‘맞아요! 나이팅게일! 그 옆서 산다고 인터넷까지 뒤졌어요! 돈은 제임스가 냈지만... 뭐, 찾은 건 저니까요!’ 셜록이 오스카의 말을 들으며 엽서를 뒤집었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Merry Christmas!
언제나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짧은 두 줄이었지만 퍽 강렬한 문자였기에 셜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누구나 한번쯤 들을 수 있는 말인데도, 셜록에겐 참으로 낯선 문장이었다. 셜록은 엽서를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자신은 오스카에게 준비한 선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셜록이 자신은 준비한게 없다고 말하자 오스카는 전혀 그럴 필요 없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면서 ‘선물은 애나 받는 거죠.’하고 말했다. 영 이율배반적인 말에 셜록이 어이없단 얼굴을 했다. 자신에게 선물을 줘놓고 선물은 애나 받는 거라니. 어쨌든 셜록에 오스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때 누군가 셜록의 계단을 헐레벌떡 뛰면서 왔다. 열려있는 문틈사이로 키 큰 남자가 서있었다. 왜 저렇게 빨리 뛰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숨이 찬 목소리로 Mr. 홈즈! 하고 불렀다. 오스카는 제임스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고 깜짝 놀란 얼굴을 하자 제임스는 겨우 숨을 고르며 셜록에게 무언가 가득담긴 바구니를 내밀었다.
‘오스카에게 가져가라고 말했었는데 잊어먹었나 봐요. 그렇게 말을 해도... 이거... 작긴 하지만 저희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별거 아니지만 받아주세요.’
제임스가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웃었다. 바구니 속에는 라쟈의 가게 상표가 달린 찻잎세트와 손수 만든 것으로 보이는 쿠키들이 있었다. 셜록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며 선물들을 받지 않으려 했지만, 어차피 자신이 그런 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몸소 깨달은 바가 있지 않은가- 이내에 남자가 내미는 바구니를 받으며 셜록은 고맙다고 말했다. 오스카에게서 선물을 받을 때처럼 딱딱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지만, 제임스는 딸과 같은 얼굴로 환히 웃으며 되돌아섰다. 오스카에게 아저씨 못살게 굴지 말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람이 좋아도 너무 좋군. 셜록이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오스카와 셜록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시작되었다. 제임스가 전달해준 쿠키를 먹고, 오스카는 우유를, 셜록은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 오스카가 수다를 떨고 셜록이 듣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괴상하기 짝이 없는 쇼프로그램을 봤다. 크리스마스랑 커플 맺기 프로그램이 무슨 상관이지. 셜록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오스카는 그것은 매우 맞는 말이오! 하며 셜록의 말에 동의했다. 다른 시리즈들과 같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간 케빈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셜록은 진부하다고 했고 오스카는 진부하긴 하지만 그래도 봐줄만 했다고 말했다. 시간은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TV에서는 또 다른 영화를 해주겠다며 예고편을 보내고 있었지만, 오스카는 졸린지 하품을 했다. 셜록은 고사리 같은 손이 인디언처럼 입을 두들기며 하품하는 것을 보았다. 셜록이 자신을 지긋이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오스카가 ‘저 안 졸리거든요!?’하고 타박했다.
“난 아무소리도 안했다.”
셜록이 그렇게 말했다. 오스카는 자신은 12시까지 버틸 수 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셜록은 그러려니 하며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새로운 영화가 시작했다. 옴니버스 식으로 사랑이야기를 꾸며낸 영화였다. 풀타임으로 본적은 없지만 가끔 스치듯 봤던 영상들이 있었다. 셜록은 이것도 저것도 전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버린 꼬마아이가 자신의 양아버지에게 말했다. ‘사랑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있어요?’ 맙소사. 저기 남자 오스카가 있군, 셜록이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오스카가 조용하다. 셜록은 그제야 자신의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오스카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작은 머리통이 왔다 갔다 하며 흔들흔들 거린다. 마치 차에 달린 목 흔들리는 인형 같다. 이내에 쿵 하고 탁자에 부딪혔지만 깜짝 놀라기만 할뿐 다시 꾸벅꾸벅 잠에 빠졌다. 셜록은 그 우스운 광경에 웃지도 않고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스카를 안아들고 3층 침실로 올라갔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침대에 오스카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이는 갑자기 편안해진 공간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다시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20분이었다. 12시는 무슨. 셜록이 웃으며 불을 껐다.
* * *
오스카는 눈을 떴다. 창문을 때리는 바람이 세찼다. 창문을 때리는 바람이 꽤나 난폭했다. 얄궂은 영국 날씨 같으니라고. 오스카는 제임스의 말투를 따라하면서 몸을 꼬물꼬물 거렸다.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오스카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새까맣던 어둠의 흔적들 속에서 조금씩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가끔씩 오스카가 어둠을 무서워하며 라쟈를 깨웠을 때, 라쟈는 오스카를 품에 안으며 천장을 바라보도록 시켰다. ‘오스카, 가만히 천장을 봐봐. 처음에는 어둠뿐이지만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단다. 인도에서는 어둠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아이들을 가르쳐. 사람은 어둠에서 태어났거든. 너도 마찬가지야. 네가 수잔의 뱃속에 있을 때, 너는 눈을 감고 있었단다. 그뿐 아니라 너는 태어나던 그 순간에도 눈을 감고 있었어. 너의 첫 친구는 어둠이야. 어둠을 무서워하지 마. 그래도 어둠이 두려울 때, 이렇게 가만히 천장을 보는 거야. 알겠니?’ 오스카는 라쟈의 말을 기억했다. 생각보다 어둠은 빨리 물러갔다. 새벽이 오고 있는 탓이었다.
천장에 있는 전등의 모양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오스카는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셜록의 침실임을 깨달았다. 이집을 뒤집으면서 다닌 오스카가의 눈에는 뻔히 보이는 광경이었다. 3층 침실이야. 오스카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생각을 더듬기 시작했다. 자신은 크리스마스 핑계를 대며 아저씨의 집에 놀러왔었다. 오스카는 눈을 깜빡였다.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오스카는 넓은 침대에서 헤엄을 치듯이 양팔을 허우적거렸다. 걸리는 것도 체온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저씨는 어디서 자는 걸까. 오스카는 문뜩 궁금해졌다. 아마 2층에 있는 침실에서 자겠지. 오스카는 엉기적엉기적 거리며 침대의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창문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하늘의 끝이 옅어져있다. 크리스마스구나. 오스카는 오늘이 12월 25일임을 예감했다. 크리스마스이브는 들뜨는 마음과 파티의 기분이 가득하지만, 되레 크리스마스에는 그런 들뜨는 기분은 오간데 사라진다. 되레 차분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심장의 끝이 있다면 그 끝으로 푸욱 잠기는 기분이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런건 아니다. 뭐랄까. 어른들의 말을 빌리자면 경건한 기분일 것이다. 오늘 새벽에 아기예수가 세상에 태어났고, -셜록은 예수가 12월 25일에 태어나지 않았다고 했지만- 세상은 작고 연약하지만, 더없이 완벽한 구원의 희망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닐까.
오스카는 여전히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일어날까 말까. 새벽이라고는 하지만 새파란 새벽은 아니고. 지금 다시 잠에 들더라도 3-4시간은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스카는 목이 말랐다. 침을 삼킬 때 목이 까끌하고 아팠다. 그냥 자자고 생각하니 목이 더욱더 말랐다. 어쩔 수 없이 오스카는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어둡지는 않았기에 오스카는 쉽사리 문을 열어 계단을 볼 수 있었다. 내려갈 때마다 끼익끼익 소리가 나긴 했지만 그렇게 큰소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오스카는 늘 벌컥벌컥 열어젖히곤 했던 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쇼파에서 자고 있지는 않겠지. 만약 쇼파에서 자고 있는 거라면... 자신이 갑자기 들어가서 깜짝 놀라지는 않을까. 작은 머리를 굴려가며 오스카가 고민했다. 가끔씩 아저씨는 쇼파에서 자곤 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아저씨가 쇼파에서 자는 것을 본적은 없었다. 누워있는 것은 본적이 있었지만- 오스카가 문고리를 잡고서 고민하고 있을 때, 너머로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때리는 바람소리 외에 모든 것이 고요했기 때문에 오스카는 그것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비록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있었지만, 무언가가 중얼거리고 있다는 것은 톡톡히 느낄 수 있었다. 오스카가 숨을 죽이는 동안에도 그 소리는 계속해서 속삭였다. 낮게 중얼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잠시 틈을 두기도 했다가. 또다시 중얼중얼 말을 했다. 마치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다만 상대가 없는 대화. 오스카는 이 집에 아저씨와 자신을 제외하고 누가 있는 걸까 생각했다. 아저씨일까? 아저씨는 저렇게 혼잣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마이크로프트?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럼 도둑? 도둑이 저렇게 혼자 말소리를 내면서 중얼거리던가. 경험은 없지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오스카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신었다. 셜록의 크기 만한 슬리퍼는 딱 오스카의 두 배였다. 헐렁거리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서 오스카는 조심스럽게 문에 손을 얹었다.
오스카가 차가운 금속에 손을 얹는 그 순간, 남자의 말소리가 멈췄다. 마치 라디오 버튼을 누르면 음악이 나오는 것처럼 즉각적이고 반사적이었다. 오스카는 당황스러웠다. 문을 붙든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참동안이나 침묵하며 서 있었다. 서서있는다고 다리가 저릴정도로 말이다. 그것은 오스카의 행동치고는 꽤나 신중한 태도였다. 말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오스카는 고민했다. 저 밖에 누가 있는 걸까. 어쩌면 산타클로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오스카는 이미 셜록이 산타클로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바람에 희망을 박살내버렸다. -사실 오스카도 그의 존재에 대해서 반신반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셜록의 말이 그다지 충격은 아니었다.- 그리고 산타클로스가 셜록 아저씨에게 선물을 주기위해 들렸다는 자체도 꽤나 웃긴 것 같아서 그런 생각자체는 그냥 접어버렸다. 계단 끝 쪽에 달려있는 창밖으로 조금 더 밝은 빛이 들어왔다. 검은 남색이 조금씩 밝고 창백한 색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오스카는 다시 침대에 기어들어가 자는게 좋을까. 아니면 용기 내어 한발자국 나가는게 좋을까 생각했다. 침대에 돌아가서 잔다면 아주 편하게 누워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궁금해서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그럴 바에야 부딪히는 게 낫지 않은가.
오스카가 용기를 내서 문고리를 돌리려고 했을 때, 철커덕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 너머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와장창하고 깨지는 소리가 난 것으로 보아 유리 같았다. 순간 오스카는 겁을 먹었다. 정말 도둑이 아닐까. 도둑이라면 자신은 빨리 도망쳐야 하는게 아닐까. 하지만 안에는 셜록 아저씨가 있는데. 아저씨가 위험해. 오스카의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졌다. 흥미로 가득 차있던 생각들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위험하다는 본능적인 감각만이 있을 뿐이었다. 오스카가 문에서 손을 땠다. 그리고 뒷걸음치더니 1층 계단으로 내려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했다. Mr. 허드슨이나! 혹은 라쟈, 제임스에게! 나무 바닥이 낡아서 그런지 이번에는 조금 크게 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오스카가 큰 소리에 되레 놀라 몸을 움츠리던 그 순간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큰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에 오스카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두려움으로 목이 막혀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자신의 몸을 무언가 덮쳤다.
그것은 거칠고 커다랗고 뜨거웠다. 뒤돌아 있는 자신을 그대로 안은 몸을 볼 생각도 하지 못한 체로 오스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머릿속으로 아빠들의 모습과 제인의 얼굴이 지나갔다. 물론 셜록의 얼굴도 지나갔다. 도와줘. 누가 나 좀 도와줘!! 공포로 막힌 목소리가 나오지 못한 체로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자신을 세게 껴안은 몸이 낮게 중얼거렸다.
“존”
그것은 친히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 하나로 오스카의 떨림은 거짓말처럼 멈췄다. 때때로 퉁명스럽지만, 친절하고 아름다운 오스카의 친구.
“존, 여기야. 여기라고.”
오스카는 그 목소리의 끝이 갈라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낮고 침착하지만, 미묘한 흥분과 슬픔으로 차있는 목소리가 오스카의 귓가를 울렸다.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아니 그것은 목소리라기보다는 칭얼거림에 가까웠다. 남자는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을 반복했다. 오스카를 존이라고 부르면서 ‘여기야. 여기라고. 다른 곳이 아니고 여기야. 여기뿐이야.’ 하고 말했다. 마치 오아시스를 발견한 여행자처럼 남자는 ‘여기야’라는 말만을 계속했다. 그 순간 엉뚱하게도 오스카는 1년 전, 학교에서 동방박사 역을 맡았던 자신이 생각났다. 그때 자신이 죽어라 외웠던 대사도 ‘여기야.’였다. 아기예수가 있는 마구간을 가리키면서 했던 대사 ‘여기야.’ 하나뿐인 희망을 안고 있는 대답. 세상의 구원을 품고 있는 공간을 가리키며 했던 그 대사. 오직 하나뿐인 그 희망. 그래, 그것은 남자가 말하고 있는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아저씨.”
여린 목소리로 셜록을 불렀다. 작은 목소리가 남자의 귓바퀴를 쓰다듬는 그 순간에 꼬옥 붙들려 있던 팔이 마법처럼 풀렸다. 더없이 견고할 것 같았던 그 팔이 점차 오스카를 떠나가고, 무릎꿇은 체로 안고 있었던 그 뜨거운 몸이 점차 물러나갔다. 그리고 오스카가 그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휘청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오스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회색의 새벽빛이 그를 감싸고, 그의 옆얼굴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새벽빛만큼이나 차갑고 새파란 셜록의 눈동자가 아이를 응시하다가 걸음을 돌려 터벅터벅 방으로 들어섰다. 곧 쓰러질 것 같은 그의 휘청거리는 걸음의 끝에 검은 쇼파가 있었다. 셜록은 쇼파의 손잡이를 부들거리는 손으로 잡으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오스카는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푸른 새벽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그곳에 셜록이 있었다. 마치 물속에 있는 사람 같았다.
오스카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셜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오스카가 셜록의 앞으로 두 걸음를 아끼고 있을 때, 남자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메마르고 창백한 그의 손등이 보였다. 남자의 어깨는 여위어 있었고. 그의 보라색 가운 너머로 보이는 손목은 가늘기 그지없었다. 셜록은 너무나도 작고 연약해보였다. 오스카가 그를 안타까운 눈으로 보고 있었을 때, 남자는 천식환자처럼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가 없어서 꼭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숨을 마시고 내쉬었다. 오스카는 그가 갑자기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싶어 공포에 젖어들었지만, 이내. 그게 남자의 울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남자는 울고 있었다.
아이같이 처절한 목소리가 방안을 조금씩 젖혀가기 시작했다. 그의 턱 끝으로 눈물이 흘렀다. 가끔 오스카는, 셜록이 전혀 운적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기에 그는 너무 자신에게 견고했고 또 감정적으로 메말라 있었다. 물론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란 이름과, 감정적으로 메말라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였다. 그러나 오스카가 틀렸다. 남자는 울줄 알았다. 그리고 울고 있었다. 오스카가 단 한번도 예상해본 적 없던 처절한 방식으로 남자는 울부짖고 있었다. 아이는 어찌할 바 몰랐다. 두 걸음만 걸어가면 그를 안아줄 수가 있는데, 작은 손을 뻗어서 그를 품어줄 수 있는데, 어째서 그가 우는지 또 어째서 그는 이렇게 슬퍼하는지 몰랐기에 오스카는 어떻게 위로해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망설이기에 남자는 너무 처절해보였기에 오스카는 무겁던 발걸음을 내딛었다.
어째서, 어째서 오지 않아. 어째서 자네는, 어째서 자네는 내게 오지 않아.
오스카가 걸음을 멈추었다.
어째서, 자네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아.
남자의 근사했던 목소리는 참혹하게 일그러져 비참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되어버렸다. 오스카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존이라는 사람을 아는지 혹은 모르는지 자신과는 상관없었다. 그가 존이라는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혹은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셜록은 너무 연약했다. 작은 오스카가 붙들어주지 않으면 그대로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스카는 참지 않고 그 작은 품으로 셜록을 안았다. 거짓말처럼 셜록이 오스카를 끌어안았다. 남자의 긴팔이 아이의 몸을 감싸 안고 그 품에서 위로를 받았다. 남자는 중얼거림 없이 엉엉 울었다. 여태동안 그 눈물들을 어디다 숨겨놓은 것일까 싶을 정도로 셜록은 끝없이 엉엉 울었다. 점차 새벽이 물러가고 아침이 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푸른빛은 그들의 발치에 걸려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스카가 같이 울음을 터뜨리던 그때, 새벽의 손이 그들의 발치에서 떠나 버렸다.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 * *
차가운 바람이 그의 손가락을 감쌌다. 마치 그의 손가락은 겨울 가지나무가 된 것 마냥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갔다. 셜록은 창을 한가득 열고서 누워있었다. 코발트블루의 셔츠가 딱딱하게 보일만큼, 추위는 매서웠다. 그러나 셜록은 어떤 자세도 취하지 않은 체로 가만히 카페트에 누워있었다. 목덜미를 갉작이는 카페트의 까끌함이 싫기도 할 텐데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셜록은 자신이 이렇게 누워있는 동안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디선가 느껴 본적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걸 데자부라고 하나. 그러나 이게 의문은 아니었다. 단지 그런 기분이 들었을 뿐이지. 셜록의 의문은 이거였다. 왜 자신이 여기 누워있는 것인지 그는 몰랐다. 멍청하게 카페트에 누워 겨울바람을 맞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질지.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달리 그는 전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어날 생각 자체가 없었다고 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셜록의 파란 눈동자가 어둠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그의 창백한 얼굴은 겨울의 외모를 닮아가고 있었다. 셜록은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있으면 얼어 죽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또 죽는다고 나쁜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셜록이 누워있는 바닥으로 쿵쿵 거리는 진동이 울렸다. 사람의 걸음소리였다.
오스카? 아니 이건 오스카가 아니야. 이건 성인 남자의 발걸음이야. 마이크로프트? 아니야. 그렇다기엔 지나치게 남자답군. 마이크로프트는 우아하게 걷는다면서 사뿐사뿐 걸어 다니니까. 어쩌면 오스카의 부모일지도 모르겠군. .... 아니야. 인도계 남자는 안짱다리여서 걸음 소리가 불규칙하지. 오스카랑 똑같이 생긴 그 남자는 발뒷꿈치를 먼저 내딛는 게 버릇이라 이것보다 날카로운 소리가 나. 그렇다면 누굴까. 어쩌면 편지를 배달하러온 청년일수도 있고, 어쩌면 경찰에서 보낸 신입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셜록은 이 발걸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남자답고 정갈하고.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좋아해서 살짝 튕기는 소리가 났었다. 한쪽 정강이가 불편해서 발걸음이 불안정하곤 했는데, 그것을 지적하면 정말 싫어했다.
셜록이 음악처럼 그 소리를 듣고 있을때, 갑자기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그러고 보니 이런 상황도 정말 익숙하군. 셜록은 기묘할 정도로 익숙한 이 상황에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 혀를 차며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셜록.”
셜록은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런 대답 없는 그를 탓하기라도 하는 듯이 목소리가 걸어와 창문을 닫으며 ‘또 어린애 같이 하늘만 보고 있었겠지’ 하고 말했다. 짜증이 서려있는 목소리와 반대로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셜록을 보고 있었다. 겨울 잔디처럼 메마른 황금빛 머리칼과, 다정한 푸른 눈이 있었다. 셜록이 얼떨떨하게 그를 바라보는 동안,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부엌으로 돌아갔다. 작지만 견고하고 단련되어 있는 몸이 부엌의 벽으로 가려졌을 때 셜록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곁에 놓여있던 의자의 등 부분을 꽈악 잡았다. 남자가 부엌너머에서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혓바닥 같은건 냉장고에 넣지 말라고 했잖아!!! 맙소사!!!!”
“.........”
“셜록!!! 제기랄!! 먹을게 아니면 넣지 마! 난 동물 혓바닥이랑 우유를 같은 곳에 저장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건 사람 혓바닥이야.”
“사람 혓바닥도 마찬가지야!!”
셜록은 여전히 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에 서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대꾸하면서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너머로 왔다갔다 거리는 작은 등이 보이긴 했지만 그의 얼굴 전체가 보이지는 않았다. 셜록은 이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저번과 같은 것일까. 저번과 같이 또다시 아무것도 모른 체로 돌아와서. 또 샌드위치를 사러나가겠다면서 자신을 불안하게하고. 존 키츠니 뭐니 나이팅게일이니 뭐니 하면서 또 말씨름을 하게 되는 걸까. 셜록은 이전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 더욱 반가웠다. 몇 번이고 몇 십번이고 몇 백번이라도 좋았다. 그래 아무것도 모른 체로 와서, 자신을 불안하게하고. 자신을 안절부절못하게 하고, 끝에서는 자신을 처절하게 울게 하더라도. 차라리 아예 사라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존이 혓바닥에 화가 났는지 짜증을 부리며 궁시렁 거렸고 셜록은 그것을 한참이나 듣고 있었다. 셜록은 존에게 어떤 말을 할까 생각했다. 샌드위치가 먹고 싶지는 않나? 아니면, 영화를 빌려와서 함께 볼까? 아니면, 이번에 새로 사놓은 차가 있는데 같이 마실까? 진부하기 짝이 없는 대사들밖에 생각나질 않았다. 평소 같았더라면 그냥 생각나는 말을 뱉어낼 텐데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있던 탓일까. 셜록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내일은 같이 장보러 갈까.”
“.....셜록, 너 패치 몇 개 붙인 거야?!”
“안 붙였어.”
“사람 놀라게 하지 마.”
존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셜록을 보았다가. 셜록이 아무것도 없는 팔뚝을 보여주고 나서야 다시 냉장고 정리를 계속했다. 그렇게 놀랄 일인가. 셜록이 생각했다. 이것보단 다른 말을 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셜록은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셜록이 말하기 전에 존이 먼저 말을 꺼냈다.
“셜록, 내가 어제 정말 이상한 꿈을 꿨단 말이야.”
“빌어먹을 꿈”
“듣기 전에 또 저러는군.”
존은 셜록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은 체로 여전히 말을 계속했다.
“어제 내가 광장에 나가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데, 정말 크더군.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커다란 불빛들도 환상적이었지. 연인들이 왔다갔다 거렸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놀더군. 여러 사람들하고 부딪히기도 했는데 어찌나 인정머리가 없던지. 사과는 전혀! 안하더군. 점점 세상이 셜록 홈즈화 되고 있는것 같다니까. -셜록이 ‘아주 멋진 세상이군.’하고 대답했다- 그래 퍽이나 멋지지. 하여튼 간에 거리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트리를 보고 있는데, 예쁘장한 애가 와서 나를 멀뚱멀뚱 보는 거야. 마치 강아지를 구경하는 것처럼. 하지만 정말 예쁜 아이었어. 빨간색 모자도, 분홍색 벙어리장갑도 너무 예뻤지. 나는 아이에게 ‘얘야, 엄마는?’하고 물었어. 그런데 그 애가 나를 가만히~ 정말 가만~~히 보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프칸? 아니면 이라크?’ 라고 했겠지.”
“.....”
“자네가 아까 세상 사람들이 셜록 홈즈화 되어간다고 하지 않았나?”
“정말 재미있는 농담이구만.”
존이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몇 번이고 존이 상상력을 발휘해보라고 했지만 셜록은 엉뚱한 대답만 내놓았다. 그리고 셜록이 책상위에 있던 책을 붙잡아 펼쳤을 때, 존은 정답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망설임과 애태움 없이 정답을 뱉어냈다.
"'사라지고 있어.' 라고 하더군"
셜록은 그게 뭐냐는 얼굴을 했다. 아주 재미없는 농담이라고 차라리 아까 전에 내놓은 자신의 대답이 더 알맞을 지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셜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리듯이 내버려둔 채로 부엌으로 달리듯 걸어갔다. 그 짧은 거리에 도달했을 때. 셜록은 자신이 서있는 곳이 부엌이 아님을 깨달았다. 자신이 서있는 곳은 바로 문밖의 계단이었다. 존이 사라졌던 그곳, 자신이 울고불고 매달리며 가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이 결국에는 떠났던 그곳. 그곳에서 존은 셜록을 기다린다는 듯이 가만히 서있었다. 그의 안타까운 얼굴이 셜록을 시야를 뒤덮었다. 셜록은 고요히, 아주 고요하게 걸으며 존에게 다가갔다. 겨울 잔디 같은 황금빛 머리칼. 다정한 푸른 눈. 내게는 단 하나밖에 없었던.
“아듀, 아듀, 너의 구슬픈 노래는 사라진다.”
셜록에게 단 하나밖에 없었던, 구원과 희망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가까운 풀밭을 지나, 고요한 시내 건너고,
저기 저 언덕 위로, 그리고 이제는
그 다음 골짜기 숲 속에 깊이 묻혀 버렸다.
이것이 환상이냐, 아니면 백일몽이냐?
또 다시, 붙잡을 수도 없이 셜록은 존을 보내야만 했다.
“그 음악은 사라졌다.... 나 지금 깨어 있는가... 잠들었는가.....”
꿈속에서조차.
* * *
Epilog
윌터가 나에게 꽃을 줬어요. 엄청 예쁜 프리지아였어요. 주변 아이들이 놀렸지만 윌터는 상관없다는 얼굴을 했어요. 저는 그런 윌터가 조금 멋있어 보였죠. 뭐 여전히 뚱뚱하고 못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그 아이는 용기내서 나에게 사과한 거니까요. 그거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윌터는 저한테 꽃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거든요! ‘미안해. 너희 아버지들을 놀려서는 안됐어.’하고요. 하, 제 생전 윌터가 멋지게 보일 날이 올 줄이야! 선생님이 저번에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은 변하는 것 같아요. 전혀 변할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움직일 때는 너무 신기해요.
세레나 선생님도 저에게 미안하다고 했어요. 자신이 부족했었데요. 그래도 여전히 ... 그 선생님은 말투가 날카롭고 못됐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자체가 놀라워요. .... 놀랍긴...한데, 나중에 저한테 ‘너희 삼촌 소개시켜줄 수 있니?’하고 말했어요. 정말 흑심이 가득하죠. 삼촌이요? 셜록 아저씨를 말하는거에요. 기억하시죠? 저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사실 아저씨는 잘생겼어요. 잘생겼다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거든요. ... 아름다운 표현도 맞는 건지 모르겠네. 하여튼 그런 흑심을 깨닫고 선생님이 더 얌체처럼 보였지만 어쩔수 있나요. 여자라는 족속이 잘생긴 부류에는 다 그런 거지 뭐.
제임스는 이번 여름에 단기로 아프리카에 갈까 생각중이래요. 그곳에 가면 아픈 어린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도울수 있다고요. 라쟈도 같이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가게 문을 한 달 동안 닫기란 어렵다며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라쟈가 갔으면 좋겠어요. 라쟈가 가면 저도 당연히 가게 되는 거니까요. 전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어요. 제임스는 모글리나 라이온킹에서 나오는 그런 풍경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 저는 그런 풍경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조금 바라긴 하지만, 저도 제 손으로 누군가를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그건 멋진 일이잖아요. 제임스는 늘 입버릇처럼 말해요. 우리는 먹고 살기위해 돈을 벌지만, 한순간 힘든 사람들을 위해 먹고살며 일할 때 그 가치는 어마어마하다고요. 그리고 그런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요. 저도 그런 순간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어 눈이 오네요. 정말 많이도 오는 것 같아요. 이번 겨울은. 이렇게 상담치료 받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죠? 좀 아쉽네요. 선생님하고 대화하는 건 즐겁거든요! 나중에 놀러 와도 되나요? 정말요?! 꼭 올게요. 저는 선생님이 주시는 사탕이 너무 좋아요. 물론 선생님도 좋고요. 크리스마스가 한참 지났으니. 제가 스스로 크리스마스 같은 날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을 만나러 오는 날을 크리스마스로 정했어요. 멋지죠?
오늘요? 사실 오늘은 셜록 아저씨와 아저씨의 친구를 만나기로 했어요. 그런데 눈이 와서 아저씨가 싫다고 할지 모르겠어요. 저번에 아저씨의 형이 와서 ‘셜록은 비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을 싫어하지. 그래서 비 올때는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외출하지 않아.’하고 말했어요. 그때 셜록 아저씨가 아저씨 형을 째려보긴 했지만... 실제로 아저씨는 눈 오거나 비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는 아저씨의 친구를 만나보고 싶어요. 아저씨 형은 그 사람이 굉장히 멋지고 친절한 사람이었데요. 그리고 셜록 아저씨에게 정말 잘해줬데요. 그래서 꼭 만나보고 싶어요. 아저씨 형의 말만큼이나 저는 그 아저씨가 좋은 사람일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