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점차 도시에서 멀어져 황금빛 벌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버스에서 메케한 담배 잔향이 났다. 메마른 공기가 손등의 살갗을 오리는 것 같았다. 너머에서 지는 태양을 보며 술루와의 마지막에 대하여 생각했다. 술루는 잘가라고 말했고 체콥은 '언젠가 봐요.'하고 말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진심으로 체콥은 그 순간이 아쉽지 않았다. 정말 자신이 말한 그대로 언젠가 볼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다신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세상은 넓었고 사람은 많았음으로 그와의 인연이 끝이라면 그 순간이 마지막임이 틀림 없었다. 진동으로 덜덜 떨리는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차가운 온도가 체콥의 두피로 파고 들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태양의 마지막 인사를 내리 받으며 체콥은 또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견딜 수 없이 외로워졌다.
그를 두게 온 것이 자신이면서도 어쩐지 그에게 버림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잘가. 마지막 인사 뒤에 밀빛 손바닥을 흔들던 모습에서 지독한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이제야 체콥은 가슴으로 전달 된 외로움을 인정했다. 다신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아쉽진 않았다. 아쉬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죽음의 끝에서 삶이 아쉬운 것이 아니듯. 단지 죽음의 끝에선 죽음이 두렵듯. 나무의 단면같이 절단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체콥은 스스로 두고 온 삶의 일부에 대하여, 의미에 대하여, 또 사랑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신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죽음과도 닮았다. 체콥은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갑자기 차가 멈추길. 문이 열리고 누군가 헐떡이며 올라타길. 검은 머플러를 손에 쥐고서 차 안을 두리번 거리길.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길. 그러나 버스는 끝없이 달렸다. 결국 체콥은 두 손안에 서러움을 철철 쏟아내며 갓난아기처럼 웅얼 거릴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