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콥은 어머니가 말했던 까만별에 대하여 기억했다. 우주 어딘가에는 까만별이 있는데 그 별은 인간의 시야에는 보이지 않지만 육안으로는 판단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고 했다. 오로지 깜깜한 우주에서 깜깜하게 빛나는 유일한 별. 체콥은 그 별을 자신만 보길 바랐다. 캄캄한 우주 가운데 캄캄하게 혼자 숨어 있다 할지라도 자신만은, 아니 자신만이 그 캄캄한 빛을 보길 바랐다.
02.
“체콥.”
“아, 미스터 술루.”
“오늘은 어땠어.”
“낮잠을 잤어요. 꽤 길게 자서 어땠는진 모르겠어요.”
체콥의 말에 술루는 모자를 벗으며 그의 곁에 앉았다. 체콥은 술루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웃으려 애썼다. 그러나 잠의 여운이 밀려와 온 몸이 녹진해져 그가 흐릿하게만 느껴졌다. 건물 사이로 해가 지고 있었고 그 사이로 비치는 빛이 술루의 뺨에 묻어 있었다. 그의 얼굴이 붉고 묽게 번지는 것을 보며 체콥은 술루가 말했던 것과 같이 똑같이 물었다. ‘오늘은 어땠어요?’ 술루는 간단한 말에 반격이라도 당한 것 마냥 움찔하다가 ‘늘 똑같았지.’하고 말했다. 모자는 벗었지만 제복은 벗지 않는다. 그가 오래 머물지 않을 거란 뜻이었다. 체콥은 자리에 일어서며 무언가 먹겠냐고 물었다. 체콥의 곁에 쭈그려 앉아 있던 골드가 고개를 들었다. 체콥은 괜찮다는 의미로 뒤로 슬쩍 손바닥을 펼쳤다. 냉장고를 뒤졌지만 먹을만한 것은 없었다. 체콥은 뒤로 다가온 술루가 보기 전에 냉장고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러나 술루는 텅텅 비어 있는 하얀 공간을 발견하고는 고집스럽게 체콥의 자리를 빼앗았다.
냉장고가 텅텅 비었잖아. 뭘 먹은거야. 점심 안 먹은거야? 먹었다고 말했었잖아. 이럴 줄 알았어. 나가서 먹...아니, 지금 장봐올게. 여기서 기다려. 속사포처럼 말을 늘어놓으며 술루는 현관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체콥은 그가 나가기 전에 허겁지겁 재킷을 챙기고 골드의 목에 목줄을 걸었다. 술루는 따라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체콥은 술루가 고집스러운 만큼 자신의 고집을 보이며 그의 곁에 붙었다. 술루는 쉽게 포기 했다. 골드는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동안 의젓하게 앉아서 번호의 움직임을 보았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체콥은 어떤 말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오늘 하루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아무말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뭐가 먹고 싶어?”
술루가 앞을 보며 물었다. 체콥은 눈을 들어 술루를 보았다. 단정한 회색 제복과 그에 견주는 단정하고 깔끔한 검은 머리통이 보였다. 어쩐지 손으로 어그러뜨리고 싶을 만큼 단정했으나 체콥은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글쎄요. 연어 샐러드는 어떨까요.’ 술루는 체콥을 힐끔 보면서 ‘연어?’하고 물었다. 술루는 연어를 좋아했다. 우주에 나갈때면 어류는 먹기 힘들었고 더불어 날것이라면 더욱 귀했다. 술루와 체콥이 식사를 나갈때면 체콥은 술루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식사뿐 아니었다. 그에 대한 것들 모두 체콥은 생각했다.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 미워하는 것. 그것은 체콥과 술루가 한 단계 발전한 관계로 오기 전, 오게 된 후를 따지지 않고 거듭되는 것이었다.
술루가 침묵하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연어 샐러드에 필요한 것들, 그 와 어울리는 음식들에 대하여 떠올리고 있을 터였다. 체콥은 그 모습을 관찰했다. 눈이 깜빡하고 감기고 떠지는 순간들 동안 술루의 움직임이 찍혔다. 체콥은 그것을 간직하기라도 하듯 더욱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다 떴다. 눈을 감눈 순간에 암흑이 밀려왔다.
“체콥, 내리자.”
체콥은 애써 웃으며 골드의 목줄을 꼬옥 잡았다. 골드가 일어나 천천히 나가기 시작했고 체콥의 걸음이 더듬더듬 앞을 살피며 나섰다. ‘미스터 술루. 먼저 나갔어요? 같이 가요.’ 턱이 살짝 떨렸으나 목소리는 편하게 흘러나왔다. 체콥은 골드를 따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술루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숨죽이며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를 따라 나서 그의 손을 잡았다.
03.
‘점멸한다.’
체콥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그렇게 표현한다. 빛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상태. 그만큼 체콥의 상태에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술루도 체콥의 상태에 대해서 표현할 때마다 ‘점멸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술루는 체콥과 달리 단 한 번도 이 표현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다. 점멸하는 빛들은 언젠가 사라져가기 마련이고 사라지는 빛 가운데서 혼자 남을 어둠은 마치 술루 혼자 껴안아야 하는 것들 같아서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원래에 선하고 착한 것들은 존재가 당하는 위협들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훨씬 잔인하고 외롭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체콥의 상태를 알게 된 것은 운항 도중이었다. 선회를 하던 도중에 체콥이 손을 멈췄다. 함장에 지시에 따라 술루는 몇 번이고 스크린을 두들기고 그만큼 체콥을 불렀으나 체콥은 그저 멍하니 앞만을 바라보며 붕 뜬 손을 천천히 웅크려들고 있었다. 술루가 체콥을 다시 불렀을 때 체콥은 ‘체콥, 선회하겠습니다.’하고 말하며 침착하게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실수 없었던 체콥에게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술루가 의자를 끌며 그를 마주했을 때 그의 눈은 충혈 되어 있었고 살짝 와닿는 손은 차갑게 느껴졌다. 체콥은 술루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 눈 안에 담긴 수많은 별들을 마주하며 술루는 ‘왜 그래?’하고 몇 번이나 물었다. 체콥은 아주 단순하게 그 상황을 표현했다. ‘미스터 술루가 보이지 않습니다.’
체콥의 증상은 산발적이었다. 시야가 다시 돌아왔을때 그는 잠시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판단했지만 4일 후 식사 도중에 시야를 잃었다. 체콥이 떨어뜨린 식판과 그의 옷에 묻은 음식을 닦아주며 술루는 그들의 앞에 있는 거대한 그늘을 힐끔 보았다. 그것은 마치 유령 같아서 형태만 있을뿐 얼굴은 없었다. 두 번째 증상이 나타났을때 체콥은 망설이지 않고 맥코이를 찾았다. 체콥은 괜찮다고 말했다. 최소한 술루에게는 그렇게 말했고 술루는 그렇게 믿었다. 아니 믿지 않았다. 귀국하자마자 체콥은 연락이 끊겼다. 술루와 함께하던 영화 관람도, 식물원 산책도, 콘서트 관람도 없었다. 술루가 휴가를 끝내고 함교로 돌아왔을때 체콥은 없었고 그의 자리 또한 없었다. 스타플릿 내에 파벨 체콥이란 이름이 사라졌다. 형체는 있으나 얼굴은 없는 것. 술루는 체콥에게 전화했다. 그러나 한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술루는 아침이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체콥에 대하여 물어 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하지 못하게 하는 체콥도, 대답할 수 없는 자신도 힘겨웠다.
04.
“가끔 바다로 와요. 골드랑요. 골드는 바다를 좋아해요. 짖거나 뛰어다니는건 아니지만 알 수 있어요. 골드와 나는 해변가에 앉아서 그냥 바다가 움직이는걸 봐요. 점멸이 시작되면 소리를 들어요. 마치 불이 꺼진 등대가 푸른 새벽가운데 있는 그런 느낌이에요. 불은 꺼지고 등대는 소리를 듣는 거죠. 점멸하는 순간의 바다는 마치 밤바다 같아요. 물론 밤바다랑은 다르겠지만요. 밤바다는 훨씬 소리가 깊거든요. 그리고 더 조용하구요. 골드는 내가 바다 소리를 듣는 동안 꼼짝하지도 않고 제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요. 가끔은 눈도 감는 것 같아요. 그렇게 둘이서 바다 소리를 들을 때면 우주에 떠 있는 것 같아요. 저랑 골드가 얼굴에 동그란 유리관을 달고서 우주를 유영하는거에요. 그리고 저먼 곳에서 술루가 있죠. 점멸하는 순간에는 볼 수 있어요. 나만이 볼 수 있어요.”
05.
연락이 온 것은 이주일이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술루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많이 상해가고 있었다. 그에게 사정이 있을거란 생각과, 그게 혹시 그가 보이던 증상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맥코이를 찾아가진 않았다. 체콥이 괜찮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는 억지로 그것을 묻지 않았다. 체콥에게 연락이 온 순간 술루는 당장에 셔츠를 갈아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체콥은 술루의 빌딩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온 몸이 상아색으로 빛나는 레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도 그의 곁에 있었다. 몇 달만에 보는 연인에게 체콥은 아주 상냥하게 ‘미스터 술루, 이쪽은 골드에요. 제 도우미에요.’하고 말했다. 평소의 술루라면 골드의 앞다리를 잡으며 인사를 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꽉 물고서 체콥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체콥은 술루가 이렇게 자신을 바라볼때면 어쩔줄 몰라하곤 했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그의 팔이나 손을 살짝 잡으며 ‘미안해요.’, ‘잘못했어요.’하고 용서를 빌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체콥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골드의 목줄을 꼬옥 잡으며
“미스터 술루, 혹시 입술을 물고 있나요. 어쩐지 그런 것 같아요. 화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술루는 물고 있던 입술을 풀고 잠시 동안 체콥의 움직이는 눈동자를 보았다. 화 안났어. 그렇게 말해야 했는데 목이 자꾸만 잠겨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체콥도 술루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두 사람에게 말한다는 것은 때로 사치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것 체콥이 술루에게, 그리고 술루가 체콥에게 주는 하나의 배려였다.
체콥은 정식으로 스타플릿에서 해고 되었다. 그는 더 이상 함선에 오를 수 없었으나 스타플릿 측에서는 그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측면의 일들을 찾아보겠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체콥은 그 호의를 기분나쁘지 않게 거절했다고 술루에게 말했다. 체콥은 이에 대하여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제가 가야할 길이 있는 것 같아요.’하고 조용히 말했고 술루는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마찬가지로 조용히 동조했다.
점멸하는 체콥의 시야는 4일, 3일, 2일 그리고 하루와 하루 안에서도 12시간, 6시간, 3시간 간격으로 찾아왔다. 체콥은 물론이고 술루마저 그것에 대하여 예측할 수 있는 단계였다. 그들은 3시간에서 2시간 2시간에서 1시간 그리고 그 한시간이 0초로 머무는 단계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들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완전하게 불빛이 꺼지는 순간을 기다리며 술루는 이것이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06.
체콥은 불안감을 자주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그의 불안은 불시적으로 튀어오르곤 했으나 그의 나이에 비하여 그것들을 매우 침착하게 참아냈다. 술루는 그의 인내심이 놀랍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불안들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두려웠다. 술루의 불안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술루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찾아왔다. 그의 분노나 외침을 예상했다. 그러나 체콥이 선택한 것은 그저 우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처럼 헐떡이며 울었고 몇 번이고 술루가 자신을 떠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소매로 눈물을 훔쳐내는 체콥에게서 술루는 어떤 위로를 해야할지 몰라 그의 말을 듣고있기만 했다.
당신이 떠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요. 난 당신이 나를 보호해야할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해요. 하지만 당신이 떠나면 차라리 보호받는게 나았을거라 생각하겠죠. 어떤 방식이로든 차라리 당신을 머물게 했더라면. 그렇게 생각하며 후회하겠죠. 그래서 나는 당신이 떠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신에게 떠나라고 말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말 할 수가 없어요.
체콥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저 흐느끼는 몸을 껴안으며 술루는 자신이야 말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우주에 3년 동안 나가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말과, 이에 대하여 떠나라고 말할 수 없다는 대답의 조합에 대해여 술루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길지 않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미안하다는 것뿐이기에 그저 그렇게 말하기만 했다.
07.
“바다에 들렸다 갈까요.”
“들어가면 안돼.”
“들어가진 않을거에요. 그냥 보기만해요. 앉아서요. 아, 혹시 배고파요?”
“아니, 그정도는 아니지만... 그래 좋아.”
체콥은 골드를 데리고 쫄래쫄래 해변가로 내려왔다. 샌프란시스코의 겨울이라 해봤자 쌀쌀한 정도지만 바다에는 그저 자신들처럼 앉아있는 사람들뿐, 바다안에서 수영하는 이들은 없었다. 체콥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이 늘 앉던 자리를 찾은 모양인지 술루에게 손짓했다. 술루가 장봐온 것들을 끌어안고 그 쪽을 향해 다가갔다. 누가 보더라도 눈에 띄는 제복이었지만 술루는 개의치 않고 모래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체콥과 같은 곳을 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푸른 바다로 붉은 햇빛의 잔상들이 떨어져 내렸다. 늘 보는 바다지만 지겨울 것 없이 아름다웠다.
“우주로 가지 않았더라면 바다속으로 갔을거에요. 우주랑 비슷하잖아요.”
“비슷한 면들도 있지. 숨이 막힌다거나, 죽기 쉽다거나 그런거.”
“우와, 진짜 로맨틱이 죽었어요. 미스터 술루.”
“그건 네 담당이잖아.”
그 말에 체콥이 헤실헤실 웃었다. 체콥을 쓰다드는 바닷바람은 쌀쌀했지만 딱 기분 좋을 정도였다. 그것은 골드도 마찬가지였는지 바다를 바라보는 갈색 눈동자가 푸근해보였다. 술루는 골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가 지는 지평선 너머를 보았다. 건물들을 지나쳐 바다 끝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체콥 또한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체콥은 고개를 돌려 술루를 보았다. 술루의 옆선과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았다.
“술루, 우리 엄마가 제가 어렸을 적에 까만별에 대하여 이야기 해준 적이 있었어요. 우주 너머에는 까만별이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당시에도 태양계와 은하계를 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쿠키틀 같은 별모양을 생각하며 까만별을 상상했었어요. 생각해보면 명왕성도 까만색이지만 잘만 빛나잖아요? 하지만 엄마는 까만별은 빛나지 않지만 분명 별이라고 했어요.”
술루는 체콥의 눈을 마주했다. 체콥이 이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엇다. 이런 기다림이 생긴 이후로는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술루는 어느새 경청하는 자세가 되어 체콥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하얀 얼굴에 빨간 홍조가 생겼고 눈동자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눈동자를 보며 술루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엄마는 이 별이 깜깜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깜깜한 별이라고 했는데. 이 깜깜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볼 수 없다고 했어요. 당시의 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알 것 같더라구요. 육안이 아니라 육안을 넘어서 볼 수 있다는 거에요.”
“마음으로 라던가- 그런거?”
“뭐 따지자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훨씬 어렵게 표현해야 할 것 같은데요.”
“자네가 그러길 바라는건 아니고?”
“그럴 수도 있고요.”
체콥은 웃으며 술루의 어깨에 이마를 톡 가져갔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자 술루는 체콥에게 어깨를 내준 채로 반도 남지 않은 석양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체콥은 그것을 보지 않고 술루를 보았다. 슬쩍 올려다보는 술루의 검은 눈동자가 깜깜하게 빛났다. 체콥은 자신의 시야가 점차 어두해짐을 느꼈다. 눈을 깜았다 뜨자 점멸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모스 신호처럼 은은한 울림마저 느끼게했다. 체콥은 이것이 마지막 점멸임을 알았다. 이 점멸 후에는 드디어 모든 기다림이 끝난 다는 것또한 알았다. 체콥은 술루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담아내고 영영 기억하길 바라며 마지막 점멸을 맞이했다.
깜빡 깜빡 그리고 다시 깜빡일 때 체콥의 시야는 온전한 우주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는 저 먼 곳에 떠있는 까만 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