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스티브는 햇볕을 처음 맞이하는 애벌레마냥 고개를 곧추 세우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구름이 지나가는 푸른 하늘 아래로 햇볕이 쏟아졌다. 높다란 나뭇잎사귀를 스쳐지나온 빛들이 산산이 부셔지며 스티브에게 떨어졌다. 스티브는 빗물을 받는 사람처럼 두 손을 오목이 모아 빛을 받아냈다. 그의 커다랗고 거친 손안에 햇빛이 그윽했다. 고여 있는 빛을 보던 스티브는 그래야하는 것 마냥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그러고 있었다.
SUNSHINE
SUFFOCATION
Tony and Steve
to. Chmun
죽음이란 귀찮다. 그건 아침에 일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때론 발톱을 깎아야 하는 것 보다 몇 배로 귀찮다. 토니는 침대에 눌어붙어 ‘대체 아침에는 왜 일어나야 하는 거지’하는 쓸데없는 말을 뱉어내곤 했다. 정의의 아이언맨은 아침에 일어나는게 미칠 것 같은 남자였다. 그는 다시 가물가물한 눈을 껌뻑이며 스륵 잠에 빠져들었다. 뺨위에 햇볕이 눌러 앉던 기어 다니던 상관하지 않았다. 잠이 드는 그 끝에 토니는 ‘죽으면 평생 잘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건 사실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잔인할 정도로 아침잠을 좋아하는 토니에게 그저 ‘죽는다.=잠잔다.’의 개념일 뿐이었다. 토니가 그렇게 잠의 끝자락을 놓는 순간에 자비스는 방탕한 아버지를 향하여 머라이언 캐리의 <Hero>를 쏘아 올렸다. 귀 끝에 퍼지는 여가수의 처절한 바이브레이션에 토니는 엉엉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죽으면 귀도 멀겠지’ 여전히 쓸대없는 생각이 줄을 이었다.
토니는 샤워를 하고 수염을 점검했다. 앞쪽이 조금 길어져 있어서 쪽가위로 잘라냈다. 페퍼가 시원하게 면도하면 어떻겠냐고 했던게 생각났다. 하지만 면도를 하면 자신은 훨씬 어려보일거다. 어느 정도냐 하면 스파이더맨정도가 아닐까. 대학생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건 자제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페퍼에게 그대로 말해주니 그녀는 ‘오해받는 김에 다시 대학에 다니는게 좋겠어요. 이미 늦긴 했지만 요즘 대학은 인성교육이 옵션이니까요.’라며 서류를 내려놓고 나갔었다. 기억할 필요 없는 것 까지 떠올려 버렸다. 토니는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그녀가 정해준 남색과 회색 스프라이프 타이를 매면서 토니는 오늘의 일정을 기억했다. 그래. 일정. 우선 한가득한 과일 바구니를 사서 그 촌내 나는 병원으로 가는 거야. 그런 다음 거기서 과일을 까먹는 거지. 우선 바나나랑 오렌지부터. 아니지 치즈버거를 사가는게 좋겠어. 다발로 사가서 또 종일 먹는 거지.
토니는 자신만만한 일정을 계산하며 윗도리에 손을 넣었다. 자비스가 선정한 최악의 음악은 이미 꺼져 있는 상태였다. 창밖으로 바다가 출렁이는 모습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정적에 싸여 있었다. 토니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선글라스를 골랐다. 그러나 쓰지 않고서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죽은듯이 고요한 방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비스, 음악 좀 틀어봐.”
-무슨 음악을 틀까요. Sir.
“아무거나 틀어봐.”
다시 정적이었다. 토니는 자비스가 망설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로봇에게 망설임이라니. 누구보다 자비스를 아끼면서도 토니는 자조적인 웃음을 금치 못했다. 자비스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느긋하게 음악소리에 토니는 인상을 팍 쓰며 ‘자비스. 너 팔아버릴거야.’ 하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자비스는 대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음악을 끄지도 않았다.
*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로저스를 불사신을 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스티브 로저스는 시간을 건너 뛴 사내지, 불사신은 아니었다. 그도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언젠가 늙고 언젠가 죽을게 뻔했다. 그것은 스티브뿐 아니었다. 토니 스타크도 언젠가 죽는다. 허옇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을 보며 ‘머리가 하얘도 잘생겼군.’하고 틀니를 반질반질 닦을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다.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쨌거나 죽으면 아침에 일어날 일 없이 푹 잘테니, 그것하나만 생각하더라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아마 스티브 로저스도 토니와 다를바 없을 것이었다. 물론 게으름뱅이 토니와 달리 스티브는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아침 체조를 할것 같은 인물이라지만 -실제로도 그렇고- 딱히 죽음에 대하여 한없이 부정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인물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스티브를 불사신 취급하는 것과 달리, 그는 언제나 죽음을 앞에 두고 담담히 살아가는 남자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는 캡틴 아메리카였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으니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토니는 그런 스티브가 조금은 못마땅했다. 뭔들 마땅히 좋다고 표현하겠느냐마는 변명을 하자면 모든 것에 담담하게 참아내는 그가 싫었다. 그러면서 불의는 못 참아서 만사를 재치고서 버럭버럭 나서는 그 모습도 싫었다. 타인을 위해서는 불꽃같은 남자가 자신을 위할 때는 어둔 새벽의 꽃 같아서 싫었다. 그 모든게 거슬렸다.
“퓨리가 보냈지?”
“차라리 햄버거 가게를 여기에 차리지 그래요?”
“맘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데 병원 측에서 고소하겠다네.”
“언제부터 고소장에 약한 남자였다고.”
“의사는 무서워. 합법적인 살인자잖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죽는건 무서워요?”
“그럼 안 무서워?”
스티브가 이지경이 될 것을 예고 받았을때, 토니는 스티브가 진심으로 불같길 바랐다. 나라를 위해 힘쓰고, 성조기를 달고 싸운 대가로 자신이 받는 것은 병상 위의 죽음밖에 없냐며 처절하게 뜨겁길 바랐다. 그러나 스티브는 그러지 않았다. 다만 아무렇지 않게 공원길을 걷다가 자신의 두 손에 가지런한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다. 그는 그 순간조차 작은 흐느낌도 흘리지 않았다. 결국 캡틴 아메리카를 죽이는 것은 우주 저편의 스타스크림도 아니었고 피라미드 아래의 미이라도 아니었다. 최대한 양보해서 뉴욕에 널려있던 못된 것들도 아니었다. 결국 그를 죽이는 것은 그의 몸, 그 자체였다. 건강하게 흘러가는 핏줄기 안에 있는 작은 문제 때문에 그는 삶을 내려놓아야했다.
그가 결국 병원의 침대위에 누웠을 때 토니는 온갖 비꼼과 감언이설로 그에게 ‘스타크 타워안에 첨단 의료 시설을 들어 놓을 거야. 자넨 그 병든 몸만 끌고 오면 되는 거지. 오케이?’하고 말했지만 스티브는 그 잘생기고 화사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냉큼 꺼지게나’라고 말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뉴욕 외각에 있는 병원이었다. 초록빛 들판에 깔린 병원 주위에는 나무밖에 없었다. 정신병원도 아니고 이게 뭐냐며 토니가 투덜거렸지만 스티브는 대꾸 해주지 않았다. 스티브에게 병원복은 최악이었다.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탄력 있는 몸매의 레이싱걸이 환자복을 입고 쇼를 하는 수준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르게 스티브는 점차 그 모습에 자신을 맞춰갔다. 건강하던 군인의 몸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꼴은 꽤나 우스웠으나 토니는 웃을 수가 없었다. 아마 평생 후회할게 뻔했다. 그가 의식을 잃기 전에 ‘그 꼴은 뭐야?’하고 놀리지 못했다.
토니는 스티브가 의식을 잃기 전부터, 그저 누워 있을 뿐인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곁을 지켰다. 이렇게 말하자니 굉장히 눈물 나는 이야기 같았지만 병원의 간호사와 의사들은 제발 토니 스타크가 이곳을 찾아오지 않길 바랐다. 병원을 쑥대밭으로 뒤집으며 시비를 거는 것은 물론이고 정원이 형편없다느니, 의료시설이 아주 아프칸 스타일이라느니, 환자들이 다 늙은이라느니. 별의별에 참견을 하고 다녔다. 스티브는 아픈 몸을 끌면서 그런 토니를 잡으러 다녔다. 토니가 간호사를 붙들고서 ‘주사 하나 놔줄래요? 엉덩이에 큰놈으로.’ 하고 성희롱을 하고 있을 때 뒤통수를 잡아끌고 병실로 들어갔다. 하기야, 이것도 초반의 이야기였다. 스티브의 몸이 많이 쇠약해지면서 토니의 지랄수준은 낮아지기 시작했고, 스티브가 의식을 잃자 그는 병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병원은 평화로워졌지만 결코 병원 직원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토니만큼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어벤저스 멤버들이 병실을 들렸다. 대부분 토니가 맞이했다. 얼굴에 소스를 묻히고 있거나 콜라를 쪽쪽 빨거나 바나나를 까면서 병원장마냥 ‘왜왔어?’하고 물었다. 배너박사는 어설프게 웃었고 바튼은 무시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머리카락만큼이나 빨간 꽃을 들고 있는 나타샤는 평소처럼 토니를 비꼬았다. 토니는 이쪽이 반가웠다.
“죽는거 무서워하는 사람 치고 콜레스트롤은 안 무서운가 보네요.”
나타샤는 바닥에 버려진 수많은 햄버거 껍질을 보고 말했다. 더불어 간이 테이블 위에 있는 콜라 또한 훑어보았다. 그녀는 토니가 가져다 놓은게 (분명 페퍼를 통해서) 싱싱한 꽃을 일부러 빼면서 자신의 꽃을 꽂았다. 당연하게 토니가 뭐라고 했지만 그녀는 결코 연연하지 않았다.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병실 내부를 울렸다. 그녀는 어깨를 살짝 넘긴 빨간 곱슬 머리카락이 햇볕에 반짝였다. 망설임 없이 열려진 창문 사이로 조금 쌀쌀한 가을바람이 스며들어왔다. 토니가 춥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묵살되었다. 그녀는 의자를 끌어다가 침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왕자님처럼 누워있는 스티브를 보았다. 어떻게 말해도 좋다고 할수 없는 혈색과 얼굴에 그녀는 침묵했다. 토니는 그 긴긴침묵이 마치 기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했기에 그 긴 시간 동안 그녀에게 말 한마디 붙이지 않고 그저 바나나만 까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연 것은 토니가 바나나 한 덩어리를 전부 까먹었을 즈음이었다.
“언제까지 여기 있으려고해요?”
“그 양반 죽을 때까지?”
“이제 작작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요.”
“여기가 내 자린데?”
“우리 모두 슬퍼요.”
“난 안 슬퍼.”
“우리 모두 안타까워요.”
“난 아니야.”
“우리 모두 그를 좋아했어요.”
“난-”
“아니라고 말할래요?”
“역시 퓨리가 보낸거지?”
나타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답지 않게 토니는 말을 끊었다. 나오지 않길 바랐던 소재였고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길 바라는 대화였다. 나타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토니는 배웅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타샤가 그의 뒤로 걸어가는 순간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직한 구두소리가 우뚝 멈췄다. ‘배웅이라도 해주지 그래요?’ 그녀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그런 스타일 아니였잖냐며 비꼬는 토니를 기다리지 않고 그녀는 문을 닫았다. 그러나 문 너머로 발소리가 없었기에 토니는 비척비척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가기 전에 그녀가 열어놓은 문을 살짝 닫았다. 토니는 스티브를 바라보지 않고 문을 나섰다.
*
‘먹는거 치고 살이 안쩠네요.’
그녀의 마지막 인사는 그게 전부였다. 그녀는 토니에게 그렇게 말하고서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토니는 스트레스 장염 때문에 먹는 대로 싼다는 농담반 진담반인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그녀의 끝을 바라보아야했다. 정작 배웅해달라고 할 땐 뭔 할 말이 있나 했더니 결국 저 한마디 던지고 사라져버렸다. 딴 때보다 훨씬 말을 아낀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게 페퍼가 지겹도록 이야기하는 여자의 육감인지 아니면 토니의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토니에게는 불편하면서도 꽤나 감사한 일이었다. 토니는 플라타너스가 길게 늘어져 있는 곳을 저 혼자서 걸었다. 촌동네인지라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하나 없었다. 하기야 말이야 병원이지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치료받는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개중에는 자식에게 버림받은 노인들도 있었다. 토니가 몇 번 체스를 두었던 그 양반은 얼마전에 죽었다. 장례식을 해줄 가족이 없어 시체 안치소에 며칠이나 있다가 결국 병원 측에서 약소하게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그리고 조금 솔직해지자면 토니는 병원 측에서 준비하는 싸구려 관을 보고는 체스 게임을 해준 성의라며 고급 오동나무 관을 보냈다. 토니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동양인 의사는 ‘당신이 여기서 한 일 중에서 가장 괜찮은 일’이라고 말해줬다. 토니는 의식이 있지도 않은 스티브를 거들먹거리며 ‘그 양반이 나한테 시킨 겁니다.’하고 말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토니는 스티브가 어째서 이런 곳을 골랐는지 완벽하게 확신했다. 외롭고 병든 노인들이 가득한 곳에서 스티브는 단연코 튀는 존재였다. 그러나 동시에 완전히 파묻힐 수 있는 존재였다. 늙은 노인네들은 그를 캡틴 아메리카로 보지 않았다. 그는 병들고 죽어가는 스티브 로저스였다. 결국 그가 바란 것은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토니 스타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스티브 로저스가 벌떡 일어나서 다시 영웅들의 세계로 뛰어 드는 것? 아니면 그의 장례식을 치루고 그 없는 생활로 돌아가는 것? 아니면 영원히 그는 이렇게 아프고 잠든 채로, 자신은 그의 곁에 간호 같지 않은 간호를 하며 살아가는 것?
토니는 장난감을 조르는 아이처럼 스티브의 곁에 붙어 있으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정해놓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스티브의 곁에 있을 뿐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게 토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제 토니는 스티브에게 죽음을 예고 받았을 때의 기분을 물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예전 같았더라면 평온하고 담담한 대답이 나올 것 같아 물어보기조차 꺼려졌을 테지만 지금이라면 어떤 대답이라도 좋으니 듣고 싶었다. 그러나 토니는 들을 수 없었다. 더 이상 그를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 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의 곁에 있으면서 그 대신 죽음을 기다려줄 수밖에 없었다.
문득 토니는 스티브가 가로수를 걷던 것을 기억했다. 자신의 죽음을 알았던 그는 터덜터덜 따라오는 토니를 뒤로하고 저 혼자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햇볕이 반짝이는 날이었다. 여기의 플라타너스대신 자작나무들이 그윽했고 주변에는 병원대신 뛰어노는 아이들이 가득했었다. 그때 스티브는 햇볕을 처음 맞이하는 애벌레마냥 고개를 곧추 세우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구름이 지나가는 푸른 하늘 아래로 햇볕이 쏟아졌다. 높다란 나뭇잎사귀를 스쳐지나온 빛들이 산산이 부셔지며 스티브에게 떨어졌다. 스티브는 빗물을 받는 사람처럼 두 손을 오목이 모아 빛을 받아냈다. 그의 커다랗고 거친 손안에 햇빛이 그윽했다. 고여 있는 빛을 보던 스티브는 그래야하는 것 마냥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그러고 있었다.
토니는 그때를 기억하며 손바닥을 모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토니는 자신의 손안에 담긴 자잘한 햇빛들을 보았다. 그것은 물결 같았다. 마치 물을 떠놓은 듯 출렁이는 물결들이 그의 손안에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 토니는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올라왔다. 그의 심장에서 올라오는 서러움은 손가락 끝이 흔들릴 정도로 진하고 깊었다. 토니는 떨리는 손을 겨우 고정하며 그 손바닥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 질식. 질식이었다. 참으로 고상도 하시지. 토니는 속으로 울먹이는 비아냥거림을 흘렸다. 그렇게 담담하다는 얼굴을 하고서 온갖 고통을 손바닥에 파묻은 그가 매우 미워졌다. 토니는 여전히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로 욕설을 뱉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가 그랬던 것처럼 긴 시간 동안 숨을 죽여 손바닥안의 햇빛 속에서 죽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