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푸른 하늘이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창백한 얼굴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자상한 어머니보단, 매정한 계모를 떠올리게 했다. 남자는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열어진 창문을 통해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갈색과 적붉은색이 무늬를 이룬 카펫에 누워서 하늘을 보았다. 맹숭한 푸름이 그의 눈동자로 가라앉았으나 그의 눈동자는 더 푸르러지기는커녕 지독하게 가라앉기만 했다. 아침에 눈을 떠도 지옥. 밤중, 잠에서 깨도 지옥. 멍청히 아침밥을 먹다가도 지옥. 간만의 영국은 이렇게도 환함에도 남자는 지옥 중에 살고 있었다. 아무리 아름답고 깨끗해도 그에게 있어 그것은 모두 거짓이었다. 책과 영화 속에 있는 불구덩이와 칼날들은 없다하더라도 그에게 이곳은 지옥이었다. 그것보다 더한 곳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몸이 떨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차갑게 얼어붙은 유리창만큼이나 자신의 손가락들은 열기를 잃어 겨울 나뭇가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코발트 셔츠 안으로도 냉기가 스며들어 닭살이 오도도 나있었다. 남자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추운 것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몇 시간이나 이렇게 앉아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1시간? 3시간? 어쩌면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이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코끝이 쨍하게 아파왔고 누워있는 등은 날개가 돋을 것 같이 아파왔다. 그러나 일어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땅속으로 스며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녹고 살이 녹고 뼈가 녹아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지독한 우울함과 상실감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눈 안으로 쏟아 들어오는 하늘은 오직 푸름만이 가득했고, 그 푸름은 아름다움보다는 공포스러웠다. 그것은 공포였다.
남자가 눈을 떨리는 눈동자를 살포시 감았을 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터벅터벅 계단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를 들으며 남자는 그 발소리를 기억했다. 최소한 허드슨 부인은 아니겠지. 그녀는 이렇게 무겁게 걷지 않는다. 살짝 뒷발을 들으며 걷지, 그것은 그녀가 구두에 상당히 익숙해져있다는 뜻이다. 그녀가 젊었을 적부터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길 즐겼을 것이다. 남성의 발자국이다. 둔탁하기보다는 가볍게 튕기는 소리를 보아서 운동화다. 발걸음이 조금 불안정한 것을 보니 무릎이나 종아리가 좋지 않은 것 같군. 남자는 발소리가 뚝 멈추는 것을 들었다.
소란스럽긴 했지만 퉁퉁퉁 울리는 소리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참이라 뚝 그치는 소리에 아쉬움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지금 남자는 괴로웠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다는 본능은 차라리 그 짧고 경쾌한 발소리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고요가 찾아오고 커튼이 나부끼는 고요한 소리를 들으며 남자는 감았던 눈을 떴다. 끼익하고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매우 기묘했다. 마치 몇 백 년 만에 열리는 성 꼭대기의 문처럼 먼지가 나부끼는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릴 정도였다. 남자는 카펫에서 몸을 일으키기 전에 자신의 방문을 연 사람에 대하여 생각했다.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될 수 있었으나, 단 사람 말고 모든 사람은 필요 없었다.
멈춰있던 발걸음이 방안으로 들어왔고 남자는 그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뻐근하고 창백한 몸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는 데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아니 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여겨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동그라한 뒤통수를 보았을 때 남자는 바닥을 딛고 있는 손끝이 번개에 맞은 것처럼 경련하는 것을 느꼈다. 커다란 점퍼에 둘러싸인 작은 몸은 마트에서 사온 듯한 여러 가지 물품을 꺼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등과 가을 언덕의 황금색 잔디같은 머리칼이 보였다. 찬바람이 거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갈대와 같은 짧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고 찬찬히 돌려지는 고개를 보았다. 마치 아름다운 조각상이 움직이는 것을 목격하는 피그말리온과 같이 남자의 마음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국에 남자를 발견한 그의 눈동자에 온전히 남자가 들어왔을 때, 황금색의 그가 미소 지었다.
“셜록”
남자는 순식간에 셜록이 되었고, 그 공간은 셜록의 공간이 되었다. 그가 이름을 부르자, 셜록은 자신이 춥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손가락 끝이 아릿하게 아파왔고 둔탁하게 느껴졌단 등의 통증은 척추가 꼬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셜록은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앞의 남자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때어놓지 않았다. 푸름을 가득 담아두었던 셜록의 눈동자가 다시 시간을 살았고, 그의 메마른 입술의 너머로 따듯한 입김이 흘러나왔다. 셔츠만 달랑 입은 체로 카펫에 어정쩡하게 앉아있는 셜록을 보면서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이 다가왔다. 그리고 셜록을 지나쳐 활짝 열려진 문을 닫으면서 ‘또 어린애 같이 하늘만 보고 있었겠지’ 하고 말했다.
그리고 웃었다. 예전처럼.
Adieu! adieu! thy plaintive anthem fades
Past the near meadows, over the still stream,
Up the hill-side and now 'tis buried deep
In the next valley-glades
Was it a vision, or a waking dream?
Fled is that music Do I wake or sleep?
잘가거라! 잘가거라! 너의 구슬픈 노래는 사라진다.
가까운 풀밭을 지나, 고요한 시내 건너고,
저기 저 언덕 위로, 그리고 이제는
그 다음 골짜기 숲 속에 깊이 묻혀 버렸다.
이것이 환상이냐, 아니면 백일몽이냐?
그 음악은 사라졌다- 나 지금 깨어 있는가 잠들었는가?
Ode to a Nightingale - John Keats
Ode to a Nightingale
Sherlock X John / 2010. 12
결국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템스 강으로 떨어지는 눈송이들은 휩쓸려가듯이 사라져갔으나, 길 위의 눈송이들은 제 모습을 지키며 차곡이 쌓아나갔다. 겨울이었다. 아무리 춥고 쌀쌀한 날씨를 느끼더라도 사람들은 눈이 오기 전까지는 겨울을 실감하지 못했다. 하얗게 내리는 눈송이를 보고나서야 ‘아 드디어.’하고 겨울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존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쁘게 지나가는 택시들의 머리위로 눈송이가 쌓인 것이 보였다. 그것을 털어내고 털어내더라도 눈송이들은 계속해서 쌓일 것이었다. 눈 구경을 한다고 가까이 선 창문엔 존의 입김으로 하얀 우물의 형상이 생겼다. 하얀 입김이 사라지는 것이 마치 천사가 어른거리며 사라지는 것 같다고 존은 생각했다.
아래에 내려가서 샌드위치라도 사올까. 눈 구경을 하며 샌드위치와 차를 마신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었다. 갑자기 간절해지는 느낌에 존은 걸려있던 외투를 챙기고 지갑을 챙겼다. 급한 일도 아니건만 들뜬 아이처럼 허둥지둥 거리며 한걸음을 내딛었을 때 굳게 닫혀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존은 갑작스러운 방문객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까만 코트와 까만 머리카락위에 새하얀 눈이 엉켜있었다. 흑백의 기묘한 조화에 존은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웃어버리면 그가 화낼 것을 알았기에 웃음을 참아냈다.
“눈이 많이 오는 모양이야”
“보다시피”
짧은 대화가 오가고 남자가 코트위의 눈을 털려고 하자 존이 남자를 저지하면서 그의 코트와 목도리를 받아내고 현관 밖으로 가져가 그것들을 털어냈다. 거실에서 털어내면 바닥이 지저분해지잖아. 투덜거리는 어투로 말하자 남자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의자위에 앉았다. 그리고 타자위에 널브러진 편지더미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외투를 차려입은 존을 발견하는 것이다. 셜록은 무미건조하게 존에게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런 무미건조함에도 불구하고 존은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의자위에 곱게 외투를 걸어놓으면서 존은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곰곰이 생각하다 뱉은 대답이라기엔 너무 단조로웠다.
하지만 단조로운 대답에도 불구하고 셜록은 살짝 인상을 쓰더니, 존에게 다가가 외투를 다시 걸쳤다. 존은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여기 앞이니까 내가 다녀와도 돼’하고 대답했으나, 셜록은 묵묵답답 ‘에그 샌드위치? 튜나?’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존의 얼굴에 낭패감이 서렸다.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이 다녀와도 된다고 말했으나 그는 존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포테이토로군’하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계단으로 성급히 내려가 버리는 셜록을 큰소리로 불렀으나 그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털컥하는 소리와 건물의 문이 열리고 새하얀 세상이 언틋 비추다가 이내 셜록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마치 얼음 마녀같이.
존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너머의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고 있으나 존에게 그것은 마치 꿈과 같은 세상이었다. 어린아이에게는 디즈니랜드, 미국의 노부부들에게는 그리스와도 같은. 존은 다시 창가로 돌아와 셜록이 걸어가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기다란 외투자락을 펄럭이며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흑표범과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나왔으나 마냥 순수한 웃음이 아닌, 억눌린 웃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였지? 하고 존은 생각했다.
눈이 오기 전이었고 여전히 날씨는 쌀쌀했으나, 지금보다는 하늘이 좋은 때였다. 존은 시장을 봐왔고 카펫에 누워있는 셜록을 발견했다. 사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할 때 셜록이 하는 짓이었음으로 단지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 뒤로 셜록이 존을 부르고 하는 행동들은 아주 낯선 것이었다. 마치 엄마를 잃은 아이의 모습 같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의 모습 같기도 했다. 존은 셜록이 그토록 상실감에 젖어있는 모습은 난생 처음으로 접하는 것이었다. 그의 창백한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고 얇은 입술은 보기 싫게 부르터 존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존, 자네 존 맞는 건가?’
창문을 닫으며 셜록을 타박하는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그 대단한 셜록치고는 너무 바보 같은 물음이라 존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의 또 다른 연극일까? 남편의 죽음에 울고 있던 과부를 속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존은 당최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물음에 답해주는 것뿐으로 ‘그래, 괴짜 같은 셜록 홈즈의 하나밖에 없는 룸메이트, 자네가 존 왓슨을 부르는 거라면, 그건 내가 맞네.’ 하고 농담 같은 말들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뒤돌아서 다시 식탁을 향했다.
식탁 위는 셜록의 실험기구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어제 치웠는데 또 이 지경으로 만들어놨군. 존은 셜록을 타박하기 위해 등 뒤의 그를 부르려 했으나 슬쩍 시야로 들어오는 먼지 더미에 움찔하고 몸을 멈췄다. 먼지? 어제 그렇게 닦았는데, 먼지? 손가락을 가져가 먼지를 긁어내리자 선명하게 자욱이 남았다. 마치 짐승의 발톱이 수풀을 가르는 것처럼 존의 흔적이 먼지가운데 스며든 것이다. 집안에 그렇게 먼지가 많은 건가? 그럴 리가?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존의 머리위에 수많은 물음표들이 뜨기 시작했고 존은 완전히 등을 돌아 셜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에게 어떤 대답을 하기 전에, 존은 아직도 잔뜩 굳은 체로 자신을 보는 셜록을 마주해야 했다.
셜록은 무엇인가 말하려고 하는 듯 입을 움찔거리고 애끓는 소리를 냈으나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거기 계속 서 있을 텐가? 존이 그런 셜록을 기이여기며 인상을 찌푸렸으나 셜록은 여전히 답답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존의 머릿속에 잠자있던 의사의 본능은 그때부터 튀어나왔고 무슨 일이 있는거냐, 어디가 아픈거냐, 대답도 하지 않는 셜록을 추궁하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손에서 떠나 식탁위에 얹히는 통조림의 소리가 제법 둔탁하게 울렸다.
존이 다가가는 동안에도 셜록은 멀뚱히 그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종국에는 그답지 않은 웃음까지 흘리며 ‘아니네, 아니야. 내가 잠을 너무 못 잤나봐. 잠을 자야겠어.’ 하고 존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자신의 어깨에 와 닿는 그의 손가락이 마치 부셔질 것만 같아 존은 더욱더 걱정이 되었다. 살인수사에 미친 이 탐정이 또 어떤 수사를 맡았기에 이토록 잠을 못 이루는 것일까? 자신의 침실로 향하는 셜록을 보면서 존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얼굴은 웃는 다기보단 울음을 참는 듯한 얼굴이었던 것 같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존이 과거를 떠올리고 있을 때 셜록이 열려있는 문을 닫으며 존에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그리고 어깨의 눈을 털기도 전에 ‘됐지?’하고 말하는 것이다. 존이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는 외투를 벗었고 아까 존이 만류했던 눈덩이들이 그대로 방안으로 떨어졌다. 존은 신음했으나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하고 책상위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내려다 놓았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으며 의자위에 걸어놓으며, 존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단지 자신은 밖에 나가고 싶었던 것뿐인데. 샌드위치가 먹고 싶긴 했지만, 그건 핑계였는데. 하지만 존은 셜록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분명 셜록 또한 존의 핑계를 알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으니까.
결국 존은 의자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눈 오는 창밖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여전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 * *
셜록은 자신의 내면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인간이었지만, 때론 누구보다 솔직했다. 그리고 그것을 존에게 설명할 때는 가식은 전혀 찾을 수 없을 만큼이나 깨끗하고 맑은 것이었다. 하지만 깨끗하고 맑다 하더라도 그것이 단지 선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존에게 아주 불편했으니까.
그가 친구의 외출에 대하여 반감을 표한 것은 사실 최근의 일이었다. 셜록 홈즈라면 마치 역마가 낀 나그네를 대표하던 명사가 아니던가. 그가 수사를 가는 때면 언제나 존과 함께하길 바랐고 또 존이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에도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같이 갈 것을 종용하곤 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같이 했고 그것에는 저녁을 먹는 것 또한 포함이 되었다. 덕분에 성적소수자로 -수소자라고 칭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제법 즐거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셜록은 자신혼자서 수사를 다니고, 밥을 먹을 때는 외출하기보단 함께 집안에서 먹자고 했다. 둘 다 음식을 잘 하지 못했기에 너무 짜거나 너무 단 음식을 먹을 때가 많았지만, 셜록은 그것에 대하여 불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되레 존 자신이 스스로 만든 음식에 눈물을 흘리며 차라리 나가 사먹자고 할 정도였다. 존의 처절한 통곡에도 불구하고 셜록은 외식을 거부했다. 그 맛없는 음식을 얌전하게 먹는 모습은 마치 성자와도 같아 보여 존은 기도라도 올려야하나. 하고 고민해야했다.
불행히도 예나 지금이나 백수신세를 면치 못했기에 존은 딱히 나갈 곳이 없었다. 가끔씩 면접을 보러 나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집에 돌아와 있노라면 셜록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가 도착하기 이전에 집에 와있는 경우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외출 따위 하지 않았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책을 읽고 있는 존을 보며 ‘자네 신발 끝에 물기가 있군.’ 등등의 말들을 툭툭 던졌다. 그리고 존은 뜨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존이 셜록의 발언에 몸을 움츠리거나, 그것을 사과할일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존은 영국의 어느 날 폭풍을 일으켰던 권리장전이나, 권리청원의 내용처럼 어떤 폭군에 대해 모든 것을 승복할 필요는 없었다.
존은 그것을 상기시키며 셜록을 향해 나는 자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또 자네가 왜 나를 이곳에 가두려고 -조금 격양된 묘사긴 했으나- 하는지 도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셜록은 열을 내는 존을 보며 되레 ‘나는 자네를 가두려고 한 적이 없는데?’하고 말하는 것이다. 존이 다시 열을 내며 입을 열러 말하려고 할 때, 존은 더 이상 자신이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랬다. 셜록은 단지 존이 외출하는 것을 싫어할 뿐 억압을 한 것도 아니고 욕설을 하거나, 그에게 폭력을 가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싫어할 뿐이었다. 셜록이 자신의 외출을 싫어하는 것은 의아한 일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그가 싫어하는 그것 자체에 대해 존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것 또한 셜록의 자유임으로.
셜록의 행동에 오기가 생겨 가끔은 할 일도 없으면서 밖으로 나돌아 다녔으나, 목적 없는 외출이 으레 그렇듯이 곧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바보상자를 바라봐아야했다. 이전에는 허드슨부인과 드라마를 보거나, 허무맹랑한 TV쇼를 보며 잡담을 하곤 했지만 무얼 하는지 부인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1층으로 내려갔을 때에도 그녀는 없었다. 그녀가 집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셜록은 가끔 아래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고 외부인과 대화를 할 때도 있었다. 선명하게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존재를 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존은 최근에 그녀와 이야기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허드슨 부인뿐만 아니었다. 사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했으나,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피하는 것같이. 끊임없이 수신음이 울려 퍼졌지만 끝끝내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존은 한숨을 쉬었다.
만날 사람이 없었고, 외출하더라도 머물 공간이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방안에 틀어박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셜록의 바람처럼. 그가 뒤에서 손쓴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그거 뭐한다고 뒷손까지 쓰면서 자신을 가둬둘까. 스스로 우스운 생각이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한편 정말 그럴지도…… 라고 여운을 남겨두었다. 존의 세계에는 셜록이 전부였다. 원하던, 원치 않던. 현재로선 그랬다.
“수사는 어떻게 전개되고있지?”
“그렇게 흥미로운편은 아냐, 모방사건들이 되레 그렇듯이 끝도 모방으로 끝나버리지. 창작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네. 첫머리를 잡았으니 마무리는 코앞이야. 이사건으로 런던 경찰들이 끙끙거렸다니 믿을수가 없더군. 되레 그것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질 정도였어”
“학교 교실에 불을 질렀다고 했던가?”
“그래, 중범죄였지, 그 안에 학생 둘이 있다는게 말이야. 듣기로는 교장이 매우 굴욕스러워 한다더군. 자신의 학생들이 그 불안에서 타죽었다는 것에 비통함을 느끼기도 전에 그는 학교의 명예가 더럽혀져 버렸다는 것에 크게 신경 쓰는것 같았네. 인간쓰레기지. 하지만 오히려 그의 그런 면모가 더 의심스럽더군”
“오히려라니? 인간성 부족은 모든 범죄의 시작이잖아.”
“내 말은 오히려 그가 쓰레기같은 자신을 부각시키려고 애쓴다는 점이 흥미로웠단 이야기야. 정도가 과도했지. 마치 범인으로 지목받고 싶어서 어쩔줄 모르는 것 같았어”
TV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의 규칙을 알아챌 만큼 지겹도록 TV를 본 나날이었다. 그러했기에 오늘만큼은 TV보다 책을 읽자고 생각했다. 셜록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답지 않게 늦도록 자는 것이 이상해 그의 침실을 힐깃 보았을 때, 그의 자리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 빈자리를 가만히 보다가 카페에 가서 책을 읽을까, 하고 생각했으나 종국에 그런 생각들을 물리쳐야만했다. 눈은 그쳤으나 길바닥은 꽁꽁 얼어있었다. 좋아하는 카페를 가려면 타운까지 나가야했고 얼음길을 감수하면서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았기에 적당히 아침을 먹고 책을 펴야했다.
마치 책읽기를 작정한 사람처럼 책을 고르는 것에 아주 신중을 가했다. 다이아몬드를 감식하는 것도 이렇진 않겠군.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비웃기도 했지만 책을 향한 집중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셜록의 책장에 꽂혀 있는 책 몇 권을 보았으나 보고 싶은 문학은 단 한권도 없었다. 아니 문학이라는 그 자체가 그의 서제에는 사라져있었다. 살인자들의 집에도 ‘호밀밭의 파수꾼’ 한권쯤은 꽂혀 있는 법이건만, 정말 한권도 없는 건가. 꼼꼼히 책장을 살펴보았을 때 발견한 책 한권이 있었다. 아주 낡고 겉표지의 제목이 거의 지워졌을 정도로 오래된 책이었으나 활자들이 살아있었다. 겨우 제구실을 하고 있는 책을 훑어보면서 존은 의아와 감탄이 내면에서 혼동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오래된 명시로 엮여진 시집이었다. 세익스피어부터 폴 베를렌느까지. 수많은 과학책 가운데 놓여있는 문학은 사람의 제법 손을 많이 탄듯했다. 꺼낼 때 먼지가 흩날리긴 했지만 어떤 시가 쓰인 부분은 접혀 있기도 했고 밑줄이 그어있기도 했다. 페이지 끝이 접힌 시는 단 두 개였는데 하나는 존 키츠의 ‘나이팅게일에게’와 폴 베를렌느의 ‘Green'이었다. 최고의 낭만주의자들이 펼치는 시의 세계에 셜록이 관심이 있었던가. 어쩌면 존을 만나기전에 처리했던 사건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존은 그의 방에 시집이 있다는 그자체가 놀랍고 흥미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셜록에게 있어 다윗의 시와 솔로몬의 사랑노래조차 그저 의미 없는 잡소리에 속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존 키츠라니.
존은 얇은 책을 뽑아들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종일 같은 시를 반복해서 읽고 다른 시들을 훑으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메모장에 써놓기도 했고 외우기 위해 더듬더듬 발음해보기도 했다. 존 키츠와 폴 베를렌느는 슬프고 몽환적이며, 아름다웠다. 고등학교시절 때 배웠던 그 아름다움은 그때의 순수와는 다른 것이었다. 쓴맛이 입에서 돌고 한숨이 쌓였다.
“...그래, 오늘은 무얼했나?”
“음? 지금 내게 뭘 했는지 물어보는 건가?”
시집을 덮었을 때는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오후를 훌쩍 넘긴 시계를 보며 ‘일자리를...’하고 신음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쉽게 찾을 법도 하건만 일자리를 찾는 것은 어려웠다. 이 시점에서 무능함을 느끼며 한탄할 줄은 몰랐는데. 어질러진 곳곳을 대충 청소하고 집안을 환기 시켰다. 몇 번씩이고 난장판을 만드는 셜록의 도구들을 치웠고 냉장고의 쓸대 없는 것들을 버렸다. 그가 와서 난리를 칠지도 모를 노릇이지만 우선 사람 사는 공간에서 살고 싶었다. 그리고 셜록이 왔다. 그의 손에는 중국음식이 있었다. 손에 음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몇 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생소했고 이상했다.
“시를 읽었어”
셜록이 고개를 끄덕이고 존은 조금 고민을 하다가 생각난 것을 말했다. 그리고 음식을 먹다말고 그의 책상으로가 시집을 가지고 와 셜록에게 건넸다. 셜록은 마치 시집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받아들고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있는 따분함을 읽어내면서 존은 역시 셜록의 것이 아니었군. 하고 추리했다. 누구의 것이냐고 존이 물었을 때 셜록은 ‘마이크로프트로군’하고 대답했다. 그 대답은 기묘한 것이라 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셜록 또한 그 책의 주인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책을 관찰하며 이끌어낸 결과, 책이 마이크로프트의 시집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었다.
“왜 그의 시집이 자네책들과 있지?”
“그건 잘 모르겠군.”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책을 닫아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평소의 버릇처럼 손을 모으고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다가 다시 존을 바라보면서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지?’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존은 상위에 놓인 물 컵을 들면서 ‘내가 시를 읽었다는 것 까지 이야기 했지’ 하고 말했고 셜록은 그랬었지. 라는 아무래도 좋을 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존은 그가 일상적인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에게 존의 따분한 일상은 상관없는 것 아니던가. 그런 그가 부러 존의 일상에 대해서 물어보고 그가 읽었던 책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은 존에게 있어 아주 생소한 일이었다.
“존 키츠의 시는 매우 아름답더군”
그것은 존의 진심이었다. 존은 셜록이 내려놓은 책을 들어 올려 존키츠의 ‘나이팅게일에게’를 펼치면서 그런 말을 꺼냈다. 사실 존에게서도 시는 매우 간만인 것이었다. 한동안 책을 가까이한 적은 없었다. TV를 보거나 이전 셜록의 사건기록을 써놓았던 것들을 읽거나, 셜록과 함께 있을 때의 그의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몇 번은 아무렇지 않게 사건현장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셜록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부정을 표했다. 그것역시 셜록에게 있어서 생소한 모습이었다. 최근의 그는 그가 아니라고 해도 될 만큼 어딘가 어설픈 구석이 있었다. 거절하는 셜록을 붙잡고서 사정할 이유는 없었기에 존도 깨끗하게 물러났다. 다만 셜록의 행동에 섭섭함을 느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떤 부분이?”
셜록이 애를 썼다.
“마지막 부분이. 화자가 모든 행복에서 깨어났을 때, 그것이 환상이었는지 꿈이었는지 혼동하는 부분이 좋았어.”
“혼동하는 부분이 좋다니, 자네가 나한테 새디스트라고 놀릴 처지가 아닌걸”
“이건 문학이잖아, 문학의 영역에선 고통조차 아름답다고”
존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하자 셜록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컵을 들었다. 존의 손에는 여전히 시집이 놓여있었다. 몇 번이고 읽을 만큼 아름다운 시였지만, 그 시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Brilliant', 'Beautiful' 정도였다. 어찌 설명하고 싶어도 존의 입에서 나오는 용어들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존이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 괴로워하건말건, 셜록의 인내는 이미 끝난 듯 싶었다. 존은 더 이상 시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셜록을 괴롭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셜록은 존의 마지막 말에 대해 반감을 느낀 듯 어딘가를 길게 응시하다가 듣기만 해도 가슴속의 세계가 흔들리는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분명 아름답고 완벽한 음성이었지만, 그 음성속의 무언가는 잔뜩 꼬여있었다.
“슬픔은 슬픔이고, 고통은 고통이야. 그 어느 것도 고통과 슬픔을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네. 플라톤은 이데아를 모방한 세상조차 이렇게 거짓으로 가득 차있는데, 이 거짓된 세계를 또다시 모방하는 예술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 나도 그것에 공감하네. 거짓을 모방한 거짓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겠나? 단지 거짓의 우두머리일뿐이지.”
셜록은 그렇게 말하면서 존의 손에 있는 시집을 빼내어 존 키츠의 시를 보았다. 그리고 존이 말했던 시의 내용을 조용히 읽어보는 것이다. 어떤 감정도 담지 않고 슬픔과 연민도 담지 않았지만, 참으로 억울하게도 그의 목소리가 훌륭하다는 그 자체만으로 키츠의 시는 아름답게 살아났다.
‘Do I wake or sleep’ 마지막의 구절이 끝나고 셜록의 푸른 눈동자가 존을 바라보았을 때, 존은 그의 목소리에 젖어있던 자신을 비판하며 그에게서 시집을 거칠게 뺏았았다. 셜록은 왜그러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바라보았으나, 존은 ‘됐네’하고 불퉁하게 말을 뱉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버렸다. 터벅터벅 문을 향해 걸어가니 뒤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존은 이 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뒤를 돌아보면서 ‘어디가는지 묻지 말게나.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하면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존은 밉살스럽게구는 셜록에게 한마디 해주고 어디라도 좋으니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셜록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문고리를 잡은 자신의 손아귀의 힘이 스륵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정쩡하게 일어나 존을 바라보고 있는 셜록의 얼굴은 마치 아주 당혹스럽다는 듯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같은 표정으로 변해있던것이다. 존은 어째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셜록은 존이 그런 물음을 하기도 전에 허겁지겁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긴 다리가 허우적거리면서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고, 그의 눈동자가 자신을 한가득 담아내며 폭풍가운데 조각배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존은 어쩌면 그에게서 단 한반도 듣지 못했던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아니, 어쩌면 언젠가 스치듯이 들은적은 있었겠지만, 그것들과 달리 지금의 셜록은 아주 다른 사람같았고, 만약 그가 100%의 감정을 품고 있는 셜록이라면 존은 당장이라도 뒷걸음을 칠것만 같았다.
셜록은
“미안해"라고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자네가 화를 낼줄은 몰랐어. 기분이 상했다면 정말 미안해’ 그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들을 들으면서 존은 지금 자신이 거실한가운데서 소나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저 셜록이 미안이라니? 정말 미안이라니?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는 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저 얼굴이라니? 어째서? 왜? 어쩌면 존은 키츠의 말대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존을 화나게 하더라도 그저 뚱하게 바라보기만 했던 셜록이 아니었다. 그는 존이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가버리는것에 대하여 그토록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공포? 그래 공포로군. 존은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그의 얼굴에 가장 적합한 단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공포였다.
그러면 어째서 너는 왜 공포를 가지고 있는거지. 평소처럼 너는 살갑지 않은 대답으로 나를 화나게하고, 나는 또 너의 말에 짜증을 부리며 벌떡 일어난 것일 뿐인데. 존이 당황스러워함에도 불구하고 셜록은 단지 존의 얼굴을 살피며 그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주길 바라고 있었다. 셜록이 자신에게 사과하고 배려하는 것은 좋은일 임에도 불구하고 존은 이 상황이 셜록만큼이나 공포스러웠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변화하게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지 알 수 가없었다. 그만큼, 존은 셜록에게 묻고 싶었다. 공포의 이유를. 그러나 물을 수 없었다. 존이 그에게 물어보고 셜록이 대답해주고 그리고 다시 그것을 존이 듣는다면, 존은 돌아오는 이야기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동반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단지 셜록이 그것을 감추기 위해 급급히 힘을 쓰더라도. 그래서
존은
“괜찮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셜록이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늘을 닮은 눈동자가 존의 얼굴을 스쳐 존이 잡고 있는 문고리를 바라보았다. 집요하게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셜록을 느끼며 존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손가락들이 문고리를 떠나자 셜록의 눈동자가 잠잠한 파도처럼 침묵했다.
* * *
겨울은 더욱 깊어졌다. 런던의 겨울은 바람난 남자를 추궁하는 여자만큼이나 끈덕졌다. 장갑을 꼈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시려웠다. 나이가 들어서 이러나.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앞사람과 어깨가 부딪혔다. 미안하다고 인사를 해도 쌩하니 지나쳐버린다. 존은 어깨를 들썩하면서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눈이 내리고 난 거리는 제법 미끄러웠으나, 역시나 런던답게 사람들의 걸음 속으로 눈들은 녹아내려갔다. 주변의 나무들에는 크리스마스 장신들이 걸려 반짝이고 있었다. 지독히도 아름다운 반짝임에 존은 눈을 비비며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크리스마스인가. 광장의 커다란 추리를 바라보는 연인들로 거리는 가득 차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그 주위로 뛰어다녔고 여기저기서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스름해지던 빛들은 결국 어둠을 이루었고 자연의 빛 대신, 인간의 빛이 발휘되었다. 존은 가만히 추리를 바라보다가 주변의 벤치에 앉았다. 벤치라기보다는 길게 놓여있는 낮은 돌담에 가까웠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추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토록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연말이라는 그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저곳 수다 떠는 사람들을 보면서 존은 자신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셜록이외에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마땅히 없었다. 아니... '마땅히'가 아니라 전혀 없었다. 존은 넘겨짚듯이 하던 생각을 바로잡으면서 물음표를 띄었다. 그랬다. 정말 한 달 동안 셜록외의 사람과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사라를 만나지도 않았고, 허드슨 부인과 대화를 한 적도 없었다. 셜록을 따라나서지도 않으니, 경찰 쪽 사람들과 만날 일도 없었고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면서 면접을 보러가지도 않았으니 일 관계 사람과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방안에 틀어박혀 밥 먹고 책 읽고 TV보고, 셜록이 오면 대화하고. 마치 세상의 중심이 셜록과 자신밖에 없는 것 마냥 살고 있는 것이다.
쓸모없게 살고 있군. 스스로를 탓하지도, 누군가를 탓하지도 못하면서 존이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끝날지 가늠되질 않았다.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절망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대로 있고 싶다는 안일감도 들었다. 역설적인 감정에 휩싸여서 눈을 껌뻑이고 있을 때 하얀 무언가가 앞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존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눈이다!”
존의 앞으로 지나가던 작은 여자아이가 외쳤다. 방방 뛰면서 노래를 부르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존은 살짝 미소 지었다. 그의 금잔디 같은 머리위로 하얀 눈송이들이 떨어졌다. 눈이 참 많이 내리는 해구나. 눈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불빛들과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눈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평화로움이 온몸을 감싸 올랐다.
셜록과의 자잘한 싸움은 여전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를 키웠을 수많은 생각들이 존을 괴롭게 했다. 셜록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려운감이 있었다. 존은 몇 십 년을 살아오면서 자신 스스로가 제법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군인이건, 의사건, 이성적이지 않으면 절대로 살아갈 수가 없는 직업이었다. 그런 환경에 처하면서 저절로 몸은 감성에 휘둘리기보단 현실적인 것들을 붙잡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곁에 있는 셜록을 볼 때면 자신이 이성적인 의견을 토로하기보다는 셜록의 태도에 대하여 감성적인 부분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황당하게도. 그리고 그것과의 흑백효과를 통하여 자신은 화만 버럭버럭 내고 있는 바보 같고 그것을 가볍게 넘기는 셜록은 한없이 관대한 칸트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존은 다시 생각해도 셜록이 단지 이성으로 가득한 남자로 생각할 수 없었다. 단지 지루함을 견뎌내기 위해서 자신을 골려먹는 것이겠지.
...아니 솔직히 그가 자신에게 농이라도 치고 화나게 한다면 그게 나을 것 같다. 가끔씩 그가 던지는 말에 상처를 받고 기분이 상해 있을 때, 예전의 그라면 전혀 하지 않을 행동들을 그는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눈치를 보면서 미안하다거나, 실망했냐고 물어보거나. 그런 물음을 듣고 있으면 존은 더 떨떠름 해져버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차라리 예전의 뻔뻔한 셜록이었다면 집밖으로 뛰쳐나가 화나 삭힐 수 있지, 이건 어찌할 바 없는 방향이었다. 존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으면, 셜록은 존을 잡고서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닌가, 이해해줘. 라던가 실망했나? 실망한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 마음이 오래가지 않길 바라. 하는 등의 간지러운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존은 역시나 ‘이건 아니야. 무언가... 뭔가 잘못됐어.’ 하고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존이 밖으론 나갈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마주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존은 언제나 다시 의자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똑같은 창밖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 무언가 잘못됐어.
셜록은 여전히 사건을 좋아했다. 그게 그의 삶이었으니 그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를 골리고 싶어 하는 범죄자들은 잔뜩 이었고, 그는 그런 범죄들에 휘둘리는 것을 좋아했다. 결국 모든 사건들이 자기 발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는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밖에서 밤을 세는 경우 없이 꼬박꼬박 존의 얼굴을 확인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는 정도. 그리고 존에게 오늘 어디 다녀왔어? 등을 물었다. 그리고 존은 늘 ‘아니’라고 대답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10시가 넘어서도 셜록은 돌아오지 않았다. 존은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면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외투를 챙겨 입었다. 여전히 쌀쌀한 날씨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나가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생긴 욕구는 누를 수가 없었다.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이 밖을 나서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서성이면서 걸어 다니다가 타운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머리카락에 쌓이는 눈은 조금씩 녹아내려 머리를 축축하게 만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가득 품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힐깃힐깃 보고 있다가 존도 미소를 지었다. 셜록이 돌아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먹을 거라도 사들고 가면 좋아할까? 아니면 혼자 외출했다고 짜증을 낼까.
몸을 일으켜 몸에 쌓인 눈을 훅훅 털어냈다. 반짝이는 트리 앞에 서서 몸을 돌렸을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 하나를 발견했다. 까만 머리에 빨간 입술을 하고 있는 여자 아이는 자신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존은 순간 이 여자아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하고 의문이 들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가 쓴 빨간색 털모자에 소복하게 눈이 쌓이고 있었고 끼고 있는 분홍색 벙어리장갑을 꾹 움켜지고 있었다. 존이 아이에게 다가가 ‘얘야, 엄마는?’하고 물음을 던지려고 했을 때 아이가 그 반짝이는 녹색 눈으로 존을 보며 단 한마디를 던졌다.
“사라지고 있어.”
* * *
깜깜했다. 어둠으로 덮여 있었고 아무것도보이지 않았다. 셜록은 순간 마음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자신을 먹어치우는 감각을 느꼈다. 마치 심장이 쿵 떨어지듯. 아니면 심장이 떨어지기도 전에 공포에 물들어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없는 백치가 되듯. 셜록은 깜깜하게 물든 방을 보며 숨을 꽉 멈췄다. 방안으로 들어서 불도 켜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했던 눈은 점차 어둠속으로 길들여져 물체의 윤곽들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는 셜록의 눈과 달리 셜록의 마음은 공포에 익숙해지지 못한 체 안절부절못했다.
1분이 흐르고 10분이 흐르고 1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1시간이 흘렀을 때 셜록은 ‘아니야’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연약했는가하면, 셜록 자신도 스스로의 목소리가 너무 처량하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지만 작은 흐느낌은 멈추질 않고 계속해서 변명했다. ‘곧 올 거야. 또 멍청하게 길이나 잊어버렸겠지’ ‘눈이 온다며 투덜거리면서 돌아올 거야. Bloody, Bloody 하고 욕하면서 문을 열겠지.’ 어울리지 않게 남자다운 성격 때문에 걸걸한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셜록은 웃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불안함은 가라앉지 않고 더욱이 갈증만을 일으켰다.
그리고 종국에는 ‘붙잡았어야했어. 사건에 나가선 안됐어!’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었다. 결국에 다가올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셜록은 그것을 예비하지 못했다. 아니 충분히 예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고 싶어 하지 않아했다. 자신은 꿈을 꾼 것이고, 지금은 꿈에서 깬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꿈이고 자신은 꿈에서 깨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영원히 깨지 않아도 좋다. 이대로. 제발 이대로.
셜록이 일그러진 얼굴로 어둠을 응시하고 있을 때 현관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고막을 때리는 발소리가 느린 듯 빠른 듯 애매하기만 했으나, 셜록은 그 발소리를 알고 있었다. 정갈하고 깨끗한 자세, 셜록은 주인의 발소리에 반응하는 고양이 마냥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오고 있던 존을 마주했다. 존이 깜짝 놀라 셜록을 바라보고 있었고 셜록은 존의 까만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억장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구나. 아직.
셜록이 존의 이름을 불렀을 때 존이 먼저 셜록의 손목을 잡았다. 그들은 여전히 컴컴한 계단에서 서있었다. 누구도 방으로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 누구도 이 분위기에 대하여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셜록이었다. 셜록은 자신의 피부로 올라오는 존의 따듯함과 함께 그가 말할 것들에 대한 조바심이 느껴졌다. 셜록은 존을 붙잡으면서 방으로 올려 보내려했지만 존은 강견하게 셜록의 이름을 불렀다.
“사라지고 있어.”
봐봐. 하고 존이 말했다. 더없이 담담하고, 더없이 평온한 어조였다. 그의 얼굴은 마치 중세시대의 벽화 속 성자 같았다. 담담한 얼굴을 하고 크나큰 계시를 내릴 가브리엘처럼. 그는 셜록에게 말했다. 셜록의 시선이 존의 팔을 향했고 그가 투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영화 속에서 영혼을 묘사하는 것 같은 투명함에 셜록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어버렸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또다시 그의 심장은 덜컹하고 내려앉았다. 다행이도 존은 셜록의 입가가 작게 경련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재미있군.”
“셜록”
셜록의 대답에 이번에는 존이 웃었다. 의례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의 작은 손이 움찔거리며 셜록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피하지 않겠다는 듯이 셜록의 눈을 바라보았다. 존은 이런 사람이었다. 한없이 작고 어리석은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결단력을 내리고, 어느 순간에 뒤돌아보지도 않은체 깨끗하게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했다. 두려움을 알면서도 그는 피하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순간 셜록은 그런 존이 한없이 야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도 지금 이 순간이 개 같아. 어이가 없지. 내 몸이 사라지고 있다니. 캐스퍼도 아니고 이게 말이 돼? 점차 희미해지는 몸을 보면서 나고 헛웃음이 나왔어. 내 몸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찾아낸 여자아이가 ‘아저씨 몸이 유령 같아’라고 말하더군? 셜록. 유령 같지 않아?”
“아니, 유령 같지 않아. 지금 자네가 잠이 덜 깬 모양이군. 찬바람을 너무 많이 맞아서 그래. 씻고 자도록해.”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사람과 부딪혔어. 넘어지기도 했어. 하지만 아무도 나를 일으켜주지도 않았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어. 처음에는 그려려니 했지만, 점차 이상하다고 생각되더군?”
“그만해.”
“자네 외에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없었지. 일을 나가지도 않으니 일 때문에 만날 사람도 없었고 자네를 쫒지 않으니 그쪽 일로 만날 사람도 없었어. 부인도 만날 수 없었어. 매일 아래서 인기척이 들리는데도 그녀는 없었지. 내가 최근에 무언가 사거나, 내 손으로 치룬 게 언젠가 했더니 언제 적인가 장을 봐왔을 때더군. 기억하지? 자네는 그때 아이처럼 카펫에서 드러누워 있다가 나를 발견하곤 ‘잠이 덜 깬 모양이군.'같은 말이나 지껄였어”
“그만해!”
“하지만 셜록, 나는 도무지 생각나질 않아. 내가 통조림을 사고. 치약을 사고, 커피를 사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마치 창백한 종이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내가 생각나는 마지막은!!!”
“존!!!!!”
“......모리아티의 웃고 있던 얼굴뿐이야”
그리고 셜록의 얼굴이 무너졌다.
“....수영장에서 자네를 보며 웃고 있던 그의 얼굴뿐이라고”
셜록이 마음이 무너졌다.
껑충한 그의 키가 가라앉고 존의 팔을 붙잡았다. 이미 희미해져버린 그의 팔을 붙잡으면서 셜록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자네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생각이 안 나는 거야’ 셜록의 목소리가 떨렸고 존은 무너지는 셜록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존은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했다. 있어서는 안 될 곳, 존재해서는 안 되는 자신. 그리고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셜록과, 존재하는 셜록. 그리고 그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왈칵하고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그러나 머리는 여전히 냉정한 체로 이 신비로운 상황에 대해 비웃고 있는 것이다.
“정말 어이없네. 어이없어. 이 초자연 현상을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내가 어떻게 감당 할 수 있지? 어떻게!!!”
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셜록은 여전히 주저앉은 체로 존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마치 기도하는 수도자처럼 셜록은 그의 손을 붙잡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셜록의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존은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자신의 몸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고 셜록은 겁에 질려있었다. 셜록을 바라보자 존은 안타까움이나 애처로움을 느끼기보다는 분노가 떠올랐다. 어째서 자신에게 단 한 마디도 없었단 말인가. 이미 존재하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어떻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렇게 지내올수 있었는가. 존이 셜록에게 자신의 분노의 처음을 시작했을 때, 셜록은 그의 말을 막으면서 얼굴을 들었다. 여전히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그의 입술은 파리했다. 존은 그가 공포에 젖어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백히 느꼈다.
“존, 생각 하지마. 그냥 자는 거야. 그리고 내일 눈을 뜨면, 자네는 다시 시를 읽고 TV를 보고 나와 이야기를 하는 거지.”
셜록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끝내려는 생각은 하지 말게. 응? 자네가 버릇처럼 말하지 않던가. 삶은 계속된다고.”
“내 삶은 끝났어”
“그렇게 말하지마!!”
셜록의 표정이 구겨지면서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호통을 지르듯 크게 소리지르는 셜록은 마치 심장에 총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몸을 움츠려들었고 존의 자켓을 잡아끌었다. 존의 몸이 휘청거렸다.
“자네의 죽음을 그대로 응시하면서 나보고 살라는 말은 하지 말아. 자네가 나와 같이 그 공포의 시간을 살지 못했다면, 나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네. 끝났다는 말도 하지 말고, 여기서 끝이라는 말도 하지 말아. 내일이 시작 될 걸세. 내일이 시작되면 우린 또다시 살아가면 되는 거야. 늘 그랬던 것처럼. 그래, 내일이 오면 함께 사건에 나가도록하지. 이번 사건은 꽤 괜찮아. 흥미롭고 분명 자네도 즐거울 거야. 또 자네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서 사람들을 한껏 기쁘게 하는 거지”
“.............”
“......존, 말 좀 해봐.”
“...........”
“말 좀 해봐!!”
셜록은, 존이 없는 시간을 살았다. 물론 그가 그와 함께한 시간을 짧은 것이었고 -그의 인생에 비해- 그가 존 없이 지낸 삶이 그와 함께 보낸 삶에 비하면 역시나 적은 것이었으나, 셜록은 그 공포를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없어진다는 것. 어느 순간에 사라진다는 것.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한순간에. 폭발이후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그리고 누군가를 바라봤을 때, 그 누군가가 자신이 원하는 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공포. 혼자라는 공포.
셜록은 존의 죽음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베이커가로 돌아왔을 때 그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가 즐겨했던 것들, 즐겨먹었던 것들, 그것들의 존재가 분명했는데도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거짓말처럼. 그리고 거짓말처럼 셜록은 남겨졌다.
그리고 어느 날 존이 왔다. 산송장처럼 겨울에 몸을 맞기고 있는 자신을 타박하면서 창문을 닫았다. 웃으면서, 마치 자신이 홀로 남았던 것이 거짓말처럼 그 역시 거짓말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셜록은 그 없이 자신이 보낸 시간들에 대해서 다 잊기로 했다. 그것은 전부 옳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존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니까. 하지만 존이 밖으로 나가는 것은 두려웠다. 어느 순간에 사라질까봐 또 먼지처럼 자신을 두고서 사라질까봐. 그가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도 두려웠다. 순식간에 다시 없어질까 봐. 노력했다. 그를 배려하기 위해서 그와 함께하기 위해서. 하지만 얻어지는 결과라는 게 다시 이것인가. 다시, 자신은 또다시 자신은. 버려져야하는가. 그가 없는 세상에?
“난 다시 자네를 보낼 수는 없네."
셜록이 엄격하게 말했다. 그러나 존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셜록은 비척이며, 그러나 빠르게 일어나 고개를 젓는 존의 얼굴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혼자 남을 수 없네’하고 말했다. 그런 것과 달리 존의 몸은 점차 식어가고 사라져가고 있었다. 투명함은 투명함의 정도를 지나쳐 점차 없어지며 윤곽 또한 드러내지 못했다. 셜록의 어둠보다 훨씬 더 존재성이 희미해져가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을 세게 부여잡는 셜록을 보면서 존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셜록의 공포가 자신의 공포를 가져간 것처럼 어느새 마음이 평안해져 있었다. 두려움은 옅어져 사라져갔다. 존은 셜록의 손등에 자신의 작은 손을 내리 얹으면서 조용하게 말했다.
“아듀, 아듀, 너의 구슬픈 노래는 사라진다.”
가까운 풀밭을 지나, 고요한 시내 건너고,
저기 저 언덕 위로, 그리고 이제는
그 다음 골짜기 숲 속에 깊이 묻혀 버렸다.
이것이 환상이냐, 아니면 백일몽이냐?
그의 입에서 나긋하게 운율이 흘러내렸다. 셜록은 그의 입을 막지도 못한 체로 홀리듯이 그것을 듣고 있어야 했다. 그것은 존의 마지막 인사였기 때문에, 셜록은 그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것조차 막는다면, 자신에게는 존의 작별인사조차 남지 못하기에, 그래서 셜록은 그것을 막지 못하고서 가만히 들어야만 했다. 존의 시가 마지막 행을 남기고서 멈췄을 때 셜록의 떨리는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